비가 올 것 같은 낮. 습도는 높았지만, 그게 그리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어떤 날은 이런 날씨가 오히려 가볍다. 마음이 무겁지 않으면, 공기도 덜 무거워지는 법이니까. 그날 나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정해진 일을 했다. 조금 달랐던 건, 아이의 책놀이 수업이 있던 오후에 왠지 동성로 교보문고에 들르고 싶었다는 것. 그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다. 책놀이를 가지 않고 교보문고에서 미술용품을 몇 가지 샀다. 필요했던 것도 있었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냥 잠시 머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소나기가 한 차례 쏟아진 뒤라, 하늘은 묘하게 투명했다. 비 온 뒤 맑은 날씨, 이런 날씨도 좋을 수 있구나 생각하며 스타벅스에 들렀다. 딸기 레모네이드를 천천히 마시려고 했고, 그때 전화가 울렸다. 오빠였다.
*깨져버린 딸기 레모네이드의 평온
“엄마가 며칠째 연락이 안 돼.”
그 한 문장이 들려왔고,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평소에도 연락이 잦은 편은 아니었다. 엄마는 이곳저곳 여행을 자주 다니시기도 하고, 최근 벌어지는 skt유심문제라고도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겠지’라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이모와의 대화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유심 문제였으면 엄마 성격상 벌써 해결했을 거야. 여행이었으면 분명 누군가에게 말했겠지. 그렇게 연락두절될 사람이 아냐.”
*확신
그 말이 이상하게 깊이 박혔다.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극단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혼자 있는 집에서, 아무도 모르게 쓰러져 며칠씩 방치된 엄마. 엄마 집과 나는 거리가 되기 때문에 서둘러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초인종을 눌렀고, 문을 두드렸다. 비밀번호도 눌러봤지만, 인기척은 없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 상황이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경찰에 연락했고, 실종신고로 접수되었다. 그제부터 마음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울었지만, 드라마처럼 횡설수설할 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더 무서웠다. 몸 어딘가에서 두 개의 감정이 동시에 자라고 있었다. 하나는 엄마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다른 하나는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막막함.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아이의 일정이었다. 합창 연습이 내일인데, 내가 대신하지 못하니까 시어머니께 맡겨야겠고. 그다음은 제본 수업. 당분간 중단해야겠지. 최우선적으로 일정 중단에 대한 공지를 띄워야 한다. 남편은 진료와 예약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일을 마치고 와야 하나 중단해야 하나에 대한 최선의 선택. 아이의 비염이 심하니, 감기를 피하려면 장례식장 근처로 호텔을 따로 잡는 게 좋겠지. 아이의 일정부터 공방 업무, 남편의 스케줄까지… 내가 미뤄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쉴 틈 없이 흘러나왔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일상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 상황 속에서 왜 내 머릿속은 이토록 질서를 유지하려 했을까. 나는 그 생각들이 떠오르는 나 자신이 너무 냉정하게 느껴졌고, 그 냉정함이 죄책감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생각이 깊어질수록 아이 옆에 있었지만, 나는 아이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할머니 죽은 거야?”
아이의 질문은 너무 곧고, 정확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감히 대답할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맴돌았지만, 아직은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이후를 상상하고 있었다. 엄마가 정말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무너지는 게 먼저일까, 내가 정리하는 게 먼저일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림과 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멈춰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기적인 걸까, 본능일까. 나는 몰랐다. 지금 이 일상들이 내가 가장 소중히 붙잡고 있던 것들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나는 엄마의 실종과 함께 내 일상이 사라질까 봐 더 겁이 났다. 아니, 불행이 시작된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경찰이 왔고, 엄마의 인상착의와 사진, 기지국 위치 추적과 출입국 기록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머릿속은 그보다 더 어두웠다.
*조용히 물었지
그리고 조금 뒤, 엄마가 출국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순간, 놀라웠을 만큼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화가 났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는 사실에 이내 곧 안도했다. 살아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 불안과 복잡한 감정을 잠재웠다. 고요해졌고, 그제야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딸기 레모네이드는 거의 다 남아 있었고, 여기저기 전화하며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없었던,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스타벅스에서 생긴 일은 해프닝이라고. 나는 엄마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죽으면 눈물이 날까, 자주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마 안 날 거라고, 나는 그런 딸일 거라고. 그런데 그날, 눈물은 생각보다 많이 나지 않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무겁고 날카로운 감정이 조용히 가슴 안에서 울렸다. 엄마가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이미 여러 번 무너졌고, 그 무너짐은 오히려 나 자신을 더 낯설게 만들었다. 어색하고 부대끼는 감정이었다. 낯설어서 이게 진실된 감정인가 의심까지 들었다. 지금에서 다시 돌이켜보면, 어제는 슬픔의 연습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던 감정들을 잠시 마주하게 되었던 걸까. 그리고 아주 조용히, 그 물음 하나를 마음속에 묻는다
평범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 같은 어제, 평범한 하루란 무엇일까?
하늘은 계속 비가 내릴 것만 같았고, 마음속에도 곧 내릴 소나기처럼 비가 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