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이가 떠난 것을 안 그다음 주에 있었던 일과 당시 적었던 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내 인생의 '선물'같은 존재들에 대해 그들과 함께한, 앞으로 함께 할 시간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 근래 내 몸은 좀 이상했다. 사무실 내의 동료 직원들은 덥다고 성화였지만, 반팔을 입고 에어컨을 틀었지만, 나는 유독 심한 추위를 느꼈고, 목티에 회사에서 나누어 준 기모 외투와 패딩까지 입었지만 이 시린듯한 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오빠의 몸이 더 이상 뜨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빠의 살을 내 몸에 가져다 대도 전만큼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추위를 잘 타는 나라 오한과 같은 추위는 그저 면역력이 좀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몸이 차서 항상 오빠 옆에 꼭 붙어서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오빠의 온기로 추위를 이겼던 내가, 며칠 간 오빠 몸이 전보다 차다고 느끼고 밤 중에는 오빠의 온기가 부족해 추워 잠이 깬 것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그럼에도 별 생각 안 하고 하루하루를 지내오던 오던 중, 어젯밤 강렬한 싸함(?)을 느낀 오빠와 나는 평소 장난처럼 말해오던 '임신'의 증상을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증상 1. 생리할 시기가 되었는데 생리를 하지 않는다.
생리 주기가 그렇게 규칙적인 편은 아니나, 월 말 월 초에는 생리 전 보이는 증상들이 조금씩 나타나다가 월 초에는 생리를 해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번 달 말 이번 달 초 생리 전 증상들이 나타나다가 갑자기 사라지고는 생리는 감감무소식이 되었다.
증상 2. 무척이나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사실 이 증상은 올해 3월, 지금의 이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직장인 증후군처럼 나타난 나에게는 너무 만연해진 증상이었지만, 특히 이번 주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증상 3. 높아진 기초체온으로 인한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다.
어젯밤 극심한 추위에 대해 얘기하면서 오빠가 내 체온이 높아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빠와 나의 살을 대 보았다. 원래 같았으면 오빠의 몸이 훨씬 뜨끈하게 느껴졌어야 했지만, 오늘 아침은 확실히 내 몸이 더 따뜻했고, 요즘 들어 그래 왔던 점을 기억했다.
오빠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 오기는 했었다. 온 가족에게 오빠와 나의 결혼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있었고, 함께 할 미래를 생각하며 꽤나 치밀한 인생 계획을 짜 온 나와 오빠였기에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계획 속에 우리의 아이가 탄생하기까지는 적어도 5년의 시간이 남아있었으며, 그 사이 우리는 직장을 다니며 미래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로 했더랬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이를 낳기 전 우리 둘만의 시간을 더 가지고 싶었다.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둘 만의 추억을 더 쌓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혹시나 젊은 커플의 혈기(?)로 아이가 덜컥 생겨버린다면 그 아이를 지우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더랬다.
물론 아직 임신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임신테스트기도 이번 주 주말에 오빠와 함께 사용해 보기로 했지만,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들어보면 나는 지금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게 당연한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난 계획되지 않은 임신에 대한 걱정스러움, 혹은 두려움보다 무언가 밝은 노랑 빛이 내 마음속을 감돈다. 어쩌면 아이가 내게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무언가 내 몸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끼면서, 혹시 임신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며 든 생각이 있다. '혹시 내게 생명이 찾아왔다면, 이 생명은 혹시 우리 둥이가 아닐까?' 하는.
둥이는 작년 시월 십일, 하늘나라로 간 우리 집 강아지이다.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아이였다. 13년 전,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밤 엄마가 그리웠던지 하울링을 멈추지 않았던 아이, 이갈이 시기 입질이 있었을 때 물면 아프다며 눈물로 하소연하자 더 이상 내 손을 물지 않던 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집에서 처음 짖었을 때 놀라는 가족들의 모습에 더 이상 집 안에서 짖는 소리를 내지 않았던 아이, 가족들이 화나면 몸을 덜덜 떨며 구석진 곳으로 숨어들고, 울면 다가와 핥아주고, 방 안에 우울하게 혼자 있으면 문을 열 때까지 방 문을 긁던 아이, 우리 둥이는 그런 아이였다. 누구보다도 영특했고, 감성적이었던 우리 강아지 둥이에게 엄마는 종종 말을 걸기도 했더랬지.
"둥이야, 우리 둥이는 이제 곧 말할 것 같은데, 언제 말할 거야? 언제 엄마랑 대화해줄 거야?"
그럴 때면 나는 우리 둥이 몸에 움파룸파족이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언젠가는 강아지의 탈을 벗고 움파룸파족이 나올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둥이를 그 어떤 존재보다도 사랑스럽고 현명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런 둥이가 이제는 더 이상 삼척, 우리 집에 있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의 시골 밭 땅 속에 누워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제껏 이런 둥이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작년 팔월 멕시코에 온 나는 이번 달 까지 9개월 간 집을 떠나 있었고, 내가 눈물이 많은 것을 잘 아는 엄마는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할 내 걱정에 둥이가 떠난 지 7개월이 지난 이 시점까지도 내게 알리지 못했다고 했다. 엄마가 오빠에게 보낸 메시지를 우연히 보면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자지러지게 울었다. 바닥에 누워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다.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나쁜 일, 슬픈 일들은 그냥 흘려버리거나 해결할 수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있는 일들이었지만, 우리 둥이의 죽음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 점은 내 심장을 짓이기는 듯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마음을 옥죄는듯한 슬픔이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둥이의 소식을 알게 된 지 일주일이 된 지금까지도 둥이 생각을 할 때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나에게 있어 둥이는 정말 '선물'같은 동생이었다. 함께 해준 12년의 시간도 물론이지만, 둥이의 죽음으로 '시간의 유한함'에 대해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겪지 않으면 모를 일. 가족들과의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모든 만남은 끝이 있다는 것. 둥이가 이렇게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면 난 언젠가 우리 엄마가,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날 때 까지도 아무런 준비 없이, 생각 없이 살다가 그들이 어딘가로 떠나버린 그 순간부터 후회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전부터 오빠의 제안으로, 멕시코에서 돈을 모은 후 나의 고향에 돌아가 살기로 결정했었지만, 둥이의 죽음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지금, 내 고향으로 돌아가 살기로 한 그 결정에 더욱더 확신하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획을 하게 해 준 오빠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그래서일까 요 근래 내게 일어난 모든 순간들이, 지금 이 순간조차도 모두 둥이가 나에게 준 선물 같다. 최근 오빠와 내가 한 카톡들을 보다가 둥이가 떠난 그날, 10월 10일 우리가 첫 연락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오빠는 둥이가 내게 보내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최근 둥이가 떠난 것을 슬퍼하며 엄마 아빠가 내 곁을 떠날 순간도 있을 것임을 떠올렸고, 마음이 아려오기도 했지만, 옆에 있는 오빠를 보며 생각했다. '미래의 언젠가 모두가 내 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사람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해 주겠구나, 내 곁을 지켜주겠구나.'라고. 그리고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를 만난 것도, 오빠와 평생 함께 하기로 한 것도 모두 둥이가 내게 준 선물 같아."
내 몸이 보내오는 이상한 신호들과 여기에 대한 나만의 생각.
모든 것들이 불확실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언제까지나 둥이는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
둥이가 준 행복을 언제나 간직하겠다고 생각해본다. 둥이를 통해 진심으로 깨닫게 된 행복의 의미를 잊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둥이를 다시 만났을 때, 둥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다. 말해주고 싶다. 너를 잊지 않았다고, 네가 나에게 준 선물들을 이렇게 잘 지켜내었다고, 너로 인해 행복할 수 있었다고, 이 모든 것을 알려주어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