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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n 09. 2022

다시 홀로가 된 자유


남편에게 호기롭게 결별을 선언했지만 그 이후 처음 얼마간은 내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힘든 시기를 넘겨야 했다. 이국 땅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과 특히 내 직업적 전망에 대한 불확실함이 내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고 다소 옹졸하게 행동하게도 했다. 반면 자유를 얻고 난 남편은 출장을 갈 때마다 여자 친구를 만나고 오는지 어떤지, 암튼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 모습에 심기가 상했는지 한 번은 내가 그에게 심술을 부렸다. 가능하면 집에 자주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새로운 사랑과 행복하게 살라고. 그는 단번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응했다. 자신은 딸을 보기 위해서 집에 들러야 한다고. 그것을 방해할 작정이냐고.

나는 곧 나 자신의 옹졸한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호기롭게 자유를 줄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속 좁게 심통을 부리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다행히도 이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번역한« 고양이 학교 » 시리즈 첫 권이 앵코럽티블 아동 문학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좋은 소식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괴로우면 그 괴로움의 원천을 타인에게 전가시키고 그를 못살게 굴고 싶어 하고, 반면 자신이 즐거우면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지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듯 나 역시 그랬다.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이 늘 그랬듯이, 출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고 그것이 내 삶을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단지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소한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앞으로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고 마치 전 세계라도 얻은 듯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니 자연히 남편에게도 관대해졌고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홀로가 된 자유가 새삼 반가웠다. 내가 여기서« 굴레 »라는 말을 쓴 건, 결혼이라는 게 행복하면 천국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지옥이거나 아니면 형체 없는 마음의 감옥이거나 굴레와 같다는 의미에서이다.

남편이 행복에 겨운 환한 얼굴로 집에 와도 더 이상 심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행복해하면 할수록 그에게 자유를 준 나의 결단이 옳았다고 판단되었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내가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나는 마음이 편안했고 동시에 나도 새로운 동반자를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의 삶이 설렘과 기쁨으로 점철되었다. 당시의 내 주변 사람들이 내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며 내 얼굴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여자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시에 아파트를 한채 사려고 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자기에게 투자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어왔다.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마다 계속 호텔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여자 친구의 집에 가서 지내다 오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의아해하며 여자 친구는 아파트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때서야 그는 여자 친구의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여자 친구는 남편과 별거 중이지만 남편이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탓에 할 수 없이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그리고 우리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딸도 하나 있다고.

어쨌든 아파트를 사겠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 올라온 감정은 심통과 노여움이었다. 나도 평범한 하나의 범인일 뿐일진대 어찌 그런 감정이 올라오지 않으랴. 그러나 나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좀 더 현명하고 현실적이 되자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계속 살기 위해서는 그에게도 다른 데서 살아갈 집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내 적금 통장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그에게 줬고 그는 그것을 자기 돈에 보태고 은행에 조금 융자를 내어 렌느라는 도시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우리가 이혼을 하지 않은 상황이니 그 집은 물론 우리 부부의 이름으로 산 것이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나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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