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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n 09. 2022

나를 행복하게 한 이벤트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이 진짜 맞는지 남편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좋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2005년부터 벨기에의 유명한 만화 출판사 다르고(Dargaud)의 계열사인 가나(Kana) 출판사의 부탁으로 한국 만화를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들이 최규석과 변기현의« 짜장면 »과 변병준의« 달려라, 봉구야 »였다. 2006년 1월 말, 가나 출판사가 이 세 작가들을 프랑스의 최규모 만화 축제인 앙굴렘 도서전에 초청하면서 나를 작가 가이드 및 통역자로 선발했다. 그것은 내가 번역한 작가들을 도서전에 안내하고 그들의 인터뷰와 콘퍼런스, 출판인들과의 토론 등을 통역하는 첫 단추를 누르는 기회를 내게 안겨주었다. 

처음이라 긴장되고 떨리기도 했지만 막상 해보니 할만했다. 통역에 대한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따라서 동시통역은 어려웠지만 번역가로서 작품 내용을 꿰뚫고 있으니 순차 통역은 가능했다. 하다 보니 나는 통역 작업에 점차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작가들과 친해지는 계기는 물론이거니와 신문 기자, 독자, 여러 출판 관계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는, 고독한 번역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정말 새로운 경험을 맛보았던 것이다.

앙굴렘 만화 축제는 파리의 도서전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일단 규모가 작고 만화라는 특징 때문인지 넘쳐나는 방문객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초청 작가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스탠드마다 긴 줄이 늘어섰고 그것은 우리 한국 작가들의 스탠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많은 만화 관련 잡지사의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우리 스탠드를 다녀갔다. 

가나 출판사 대표가 마련한 저녁 회식 자리에서는 세 작가들의 앞으로의 작품 계획과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들과의 공동 작업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통역을 하느라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재미는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세 작가와의 콘퍼런스 통역 역시 내가 맡았는데, 그 경험은 동시통역은 몰라도 적어도 순차 통역에 한한 내 능력에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또한 만화 축제에 초청된 모든 작가들 및 귀빈들이 함께하는 저녁 만찬회도 있었는데, 이런 행사는 다른 어느 도서전에서도 볼 수 없는 앙굴렘 만화 축제만의 특징인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내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앙굴렘 만화 축제의 방문은 « 고양이 학교 »의 앵코럽티블 문학상 후보작 선정 소식 이후였고, 따라서 앙굴렘에서 돌아온 후 2월부터는« 고양이 학교 »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 전국의 순례 여행에 나섰다. 좋은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앵코럽티블 문학상을 수상한지 얼마 안 되는 2006년 6월 말, 남불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Provence-Alpes-Côte d’Azur) 지방의 인문 고등학교 학생 및 실업 고교생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문학상 후보작에 변병준 작가의« 봉구야 달려라 »가 올랐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고, 가나 출판사는 또 나를 작가의 동행자 및 통역인으로 추천을 했다. 이 상은 소설과 만화 두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각 카테고리당 6섯 작품씩,  총 12 작품을 뽑는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앵코럽티블 문학상과 비슷한 방식으로 1년간 12 작가들을 돌아가면서 초청해 투표권이 있는 여러 고등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변병준 작가는 12월 초에 초청되었으니 나는 거의 1년 만에 그와 재회한 샘이었다. 그를 동행해서 액상프로방스, 마르세유, 망통, 니스 등 여러 남불 도시 및 마을들을 돌며 가진 고등학교 학생들과의 대담회, 서점들에서의 사인회, 동 시기에 초청된 작가들과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대강당에서 이루어진 합동 토론회 등등, 그 일주일간의 흥미진진한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시간이 날 때면 그 아름답기로 유명한 코트다쥐르 해안을 드라이브했고 마르세유 도시의 시장과 거리 구석구석을 산책했는데, 변작가는 가는 곳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혹시라도 미래의 작업에 쓰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애석하게도 5월에 이루어진 투표 결과, « 달려라 봉구야 »가 2등에 올라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일주일간의 순례 행사가 상보다 훨씬 더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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