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이벤트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 고양이 학교 » 시리즈가 상업적인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2007년 4월의 어느 날, 필립 피키에 출판사 대표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피키에 출판사 내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을 담당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그것은 좋은 소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좋은 소식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선 한 출판사 내의 기획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번역 일거리를 찾지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프리랜스의 불안감을 조금은 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내가 읽고 검토해서 내가 원하고 내가 선택하는 작품들을 번역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번역가로서는 뭐랄까 일종의 특혜를 받는 위치에 서게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뛸 듯이 기뻐하며 맡겨만 준다면 큰 영광이라고 즉각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필립 대표님을 파리에서 만나 계약 조건에 대해 논의하고 앞으로 아동 및 성인 문학의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해외 수용 가능성이 높은 한국 문학의 걸작들을 규칙적으로 소개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주말마다 한국 작품의 베스트 목록, 신간 베스트, 새로 나온 작품 목록, 한국 소설 베스트 등등을 샅샅이 뒤지며 보물을 찾아 헤맨다. 괜찮은 작품이 눈에 띄면 에이전시나 한국 출판사에 연락해 책이나 피디엡 원고를 보내달라고 해서 읽어보고 일단 내 기준에서 프랑스 도서 시장에 먹힐 가능성이 높으면 시놉시스와 서평을 준비해서 출판사 사장님을 만나 구술로 소개한다. 물론 내가 소개하는 작품들 모두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며, 출판사 대표님의 기준에서 다시 여과된다.
필립 대표님은 기획가로서의 내 능력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고, 파리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작가들의 문학 콘퍼런스나 문학상 시상식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중 앞에서 내 능력을 공공연히 칭찬하곤 하셨다. 필립 대표님과 나는 거의 10년이 넘도록 서로에 대한 돈독한 존중과 신뢰와 우정으로 꽤 정규적으로 만나 함께 일을 해왔다. 중간에 번역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개입으로 인해 삐거덕거린 우여곡절이 몇 차례 있었긴 했지만.
현재 필립 대표님은 공식적인 은퇴를 한 상황이고 피키에 출판사의 새 대표가 된 딸 쥴리에트 씨를 뒤에서 스포트 해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책 소개를 할 때는 언제나 쥴리에트씨와 함께 듣고 작품 선정에 여전히 결정적으로 관여하신다.
어쨌든 이 한국 문학 컬렉션 기획부장의 자리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번역가의 길을 보다 안정적으로 가게 해주었고,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 문학작품을 꾸준히 소개, 번역해 오는 이른바 한국 문학 전도사로 자리매김하는데 크게 기여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