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역 작업을 하면서 틈틈이 남는 시간이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아동 소설도 창작해보고 한국의 전래 동화들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써보기도 했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출간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불어로 작성했다. 그중 몇몇 텍스트는 여기저기 알고 지내는 프랑스 지인들에게 교정을 받은 후 여러 출판사에 보내보기도 했지만 묵묵부답이거나 부정적인 해답만 돌아왔다. 글을 쓰는 것 까지는 자유지만 그 원고가 한 출판사에 의해 채택되어 출간에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나는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부정적인 해답을 받을 때마다 실망감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출판사를 찾았다. 글은 계속해서 썼지만 출판은 하지 못한 채 여러 해를 보내고 있다가 나는 드디어 좋은 인연을 만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에서 찬옥 출판사를 창립한 한국 입양인 엘렌 샤르보니에(Hélène Charbonier)와의 만남이었다. 한국의 전래동화와 현대의 그림 앨범 등 한국 아동 작품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동문학 출판사로서 그녀가 먼저 내게 번역을 의뢰해 옴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나 역시 한국 동화를 쓰고 있다고 하니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원고를 자기에게 보내보라고 했다. 그래서 첫 원고로 « 토끼와 용왕 »을 보냈더니 흔쾌히 출판하겠다는 답이 왔다.
그 소식은 내게 또 하나의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가 없었고 내게 작가의 길을 열어준 첫 관문이었다. 찬옥 출판사는 내 텍스트의 삽화를 한국의 박철민 작가에게 맡겼는데, 이후 책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3년이 걸렸다. 그것은 찬옥 출판사가 창립한 지 2년 만에 재정적인 문제에 부닥쳐 2008년에 큰 출판 그룹인 플라마리옹 출판사의 라벨로 들어가게 된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찬옥 출판사는 연간 열 권 이상의 한국 그림 앨범들을 출간해 냈고 그 대부분의 번역을 나와 내 공역자가 맡아서 했다.
그렇게 함께 일하던 어느 날, 나는 엘렌 씨와 플라마리옹 출판 그룹의 아동문학 총책임자의 점심 초대를 받았는데, 식사를 함께하면서 우리는 찬옥 출판사가 앞으로 낼 창작물에 대해 논의했고 두 분이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를 테마로 다루는 작품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내게 제의를 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이미 아이디어들이 풍성하게 떠올랐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여섯 권짜리의 진주 시리즈였다. 엘렌 씨는 또 내게 한국 전래동화인 젊어지는 샘물, 콩쥐와 팥쥐, 바보 온달 등의 이야기를 재창작해보라고 건의했다.
찬옥-플라마리옹 출판사의 이러한 제의는 나의 창작 열정에 불을 댕겼고, 오후 산책 시간이나 일요일 수영을 할 때면 머리로는 늘 작품 구상을 했고, 저녁이면 이를 글로 정리해 보는 것이 즐거웠다. 다행히도 나는 이 시기에 치과 의사이기도 하면서 독서를 즐기고 문학에 조예가 깊은 남자 친구가 생겨서 내가 쓴 원고는 반드시 그의 교정을 거쳐서 출판사에 전달되었다. 당시 그의 도움은 내게 소중하게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