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받기만 하는 못난 엄마 이야기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녔을 무렵이니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이다. 아이는 밤에 누워서 자신의 '사랑 바구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은 아주 큰 사랑 바구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더 가득 채워줘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주는 사랑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당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다소 억울했으나, 금방 수용했고 아이에게 감탄했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자신이 보기에 무심한) 엄마에게 정확히 말로 표현한 것이다.
남자아이는 엄마의 관심과 인정을 바란다. 아이는 늘 '엄마 봐봐봐'라고 말하며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이의 꿈은 피아니스트였고,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연습하고 연주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 첫 진로는 '심리학'이었다. 심리학 동아리에 가입했고 관련 책을 읽었다. 대학원에 보내줄 여력이 되는지 집의 경제 사정을 묻기도 했다. 아이의 기질에 잘 맞는 진로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2학기가 되어 화학계열로 진로를 변경했다. 아이들의 진로는 수시로 변하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루는 아이 방 청소를 하다가 서랍 깊숙이 웬 서류가 있는 것을 보았다. 무심히 꺼내서 보고 적잖이 놀랐다. 몇 해전 나는 교권 침해 사안으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며칠 휴가를 쓰며 정신과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병원에서 작성한 설문지가 아이의 서랍에 있었던 것이다. 아주 많은 문항으로 된 문장을 완성하는 형태의 설문이었다. '이 설문지가, 엄마에 대한 걱정이, 한때 아이의 진로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 밑 어딘가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려서 찍힌 사진 속에 나는 늘 울고 있다. 부모님은 생계의 현장에 내몰린 삶을 사셨기에, 나처럼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의 요구는 일관되게 무시했다. 내가 원하는 아주 사소한 것도(아마 경제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채워지는 않는 사랑의 갈증으로 울었다. 그렇게 사진이 남아있다. 나는 부모님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착하고 온순한 남동생이 미웠다. 나 또한 내 아이처럼 큰 사랑바구니를 가지고 있었으나,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동생을 괴롭히고 엄마를 괴롭혔다. 나는 초등 저학년까지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했다. (내가 느끼는 사랑의 결핍으로) 내 삶 곳곳에 구멍이 났다. 잘못을 하고 엄마한테 더 맞더라고 절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엄마가 미웠기에 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였다. 살며 그 누구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아이에게 받으며 살고 있다. 과분한 아이가 내 자식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엄마를 걱정하는 아이는 제대로 독립할 수 없다. 내 외로움이, 내 부족함이 아이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엄마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세상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이제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세계, 그것은 내 아이의 독립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