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소리튜닝 36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시조 배우셨을 겁니다.
시조 한 수 읊어 보겠습니다.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직접 소리 내서 읊어 보세요.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한자어가 어렵다면 현대어로 읊어 보세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사랑하는 님/ 오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
조선시대 명기, 황진이의 시조입니다.
스승 서경덕을 그리며 지었다고 하죠.
아래 서경덕의 시조도 읊어보세요.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닙/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현대어로도 읊어 보세요.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겹겹이 쌓인/ 깊은 산골짜기에/ 어느 임이/ 오겠느냐만/
떨어지는 잎과/ 부는 바람소리에/ 혹시 임이 아닌가/ 생각하노라/"
여기서 '님'은 황진이일 거라고 합니다.
황진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하네요.
두 시조 모두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조라서 선택했습니다.
시조를 읊어보니 어떠신가요.
술술 읽히지 않나요?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읽힙니다.
게다가 잘 들립니다. 듣기도 편안합니다.
한국어 모국어 화자라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시조 중간중간에 사선을 그려 넣는데요. 음보를 표시한 겁니다. 모든 4군데죠.
시조가 술술 읽히고 듣기 편한 것이 4음보(音步)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시조 속에 우리말 리듬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4음보로 된 말을 좋아합니다.
아래 시조를 다시 읊어 보세요.
이번에는 4음보로 끊어서 말하듯이 해보세요
"초장: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4음보)
중장: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4음보)
종장: 사랑하는 님/ 오신 밤이거든/ 굽이굽이/ 펴리라/(4음보)"
"초장: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4음보)
중장: 겹겹이 쌓인/ 깊은 산골짜기에/ 어느 임이/ 오겠느냐마/(4음보)
종장: 떨어지는 잎과/ 부는 바람소리에/ 혹시 임이 아닌가/ 생각하노라/(4음보)"
어떠신가요. 리듬이 살죠?
말하기도 듣기도 좋습니다.
음보(音步)는 시조에서 운율, 즉 리듬을 만듭니다.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 모두 4음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읊는 내내 리듬이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을 네 덩어리로 끊어 읽었더니 말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더라.
말하기 좋고 듣기 편한 우리말소리는 4음보로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우리말 리듬을 살리려면 바로 이 4음보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중에 '4음보로 말하는 법'에 대해서도 연습해 보겠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말 리듬, 4음보를 한번 더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제가 좋아하는 시조,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가'입니다.
한산(閑山)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우리말 리듬을 살려주는 건 4음보 말고도 더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