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모닝페이지 : 나를 위한 투자에 이유는 필요 없다
전쟁의 기술은 간단하다. 하나, 적의 치를 파악한다. 둘, 가능한 빠르게 공격한다. -율리시스 S. 그랜트
유일하게 불가능한 여정은 아직 한 번도 발을 내딛지 않은 여행이다. -토니 로빈
'인간의 자연적 욕구는 아주 쉽게 충족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나는 이 두 격언이 옳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나는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건강했고, 마음의 평온을 누렸다. 친구의 배신이나 변덕도, 공공연하거나 숨어 있는 적이 주는 해도 느끼지 않았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
문 : 제가 피아노를 잘 칠 때쯤이면 몇 살이 되는지 알기나 하세요?
답 : 물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배우지 않아도 그 나이를 먹는 건 마찬가지죠.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p239
오랜만에 만난 지인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화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공부’로 흘렀다. 요즘 내가 듣고 있는 독서법 강좌와 함께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자, A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도 공부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이 들어서까지 공부할 필요 있어?"
처음엔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A의 말엔 농담이라기엔 묘한 단호함과 냉소가 묻어 있었다.
"수능도 끝났잖아. 이제는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굳이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책을 파고드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고생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A는 여전히 ‘공부는 수능을 위한 것’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다. A는 자신이 어릴 때 공부를 꽤 잘했다는 걸 이야기하며 느닷없는 자랑을 시작했고, 지금 와서 굳이 또 공부하는 건 이상하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렸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중간에 말을 끊어버렸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굳이 이렇게 공부하는 삶을 A에게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A의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고, "어차피 관심 없는 사람은 이해 못 해."라는 말로 대화를 공손히 마무리한 건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었다. 불필요한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인문학에 빠지고, 독서법을 파고들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A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누구의 이해나 인정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를 통해 나 자신을 돌본다. (더 정확히는 공부는 내가 나를 키우는 방법이다.)
나이 들어서도 하고 있는 공부는 시험을 위한 것도, 커리어를 위한 경쟁도 아니다. 하루하루를 좀 더 충만하게 살아내기 위한 삶에 관한 존중이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은 내 안에 조용히 침전된 감정들을 꺼내 보고,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정보는 쏟아진다. 그런 속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나는 스스로의 속도로 천천히 읽고, 쓰고, 정리한다. 독서법을 배우는 건 단지 책을 잘 읽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도 책은 매우 잘 읽고 있다.
독서지도사로서 내게 필요한 부분을 늘 스스로 채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오면 좀 더 도약할 필요성을 느낀다. 도약의 시기이기 때문에 나보다 고수인 사람들의 강좌를 듣고, 책을 보며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떠한 공부든 내겐 단순히 시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감각이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느리지만 확실한 투자다.
비록 수능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인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이가 들었지만, 어차피 먹을 나이라면 더 열심히 배우고 싶다.
삶이 계속되는 한 공부 역시 멈출 이유가 없다. 한 줄의 문장이 나를 붙잡고 단 하나의 개념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할 수 있다면 그건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그러니 제발 왜 아직도 공부하냐고 묻지 좀 마라.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배우고 공부한다. 이유는 필요 없다. 내 삶을 좀 더 깊이 사랑하고 싶으니까 무언가를 배우며 성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