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과 더불어 한국문학에 다시 빠져들다
나는 늘 먼 세계를 동경했다. 러시아의 눈밭 위를 걷고, 라틴 아메리카의 마법 같은 현실을 지나, 프랑스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의 잃어버린 사랑을 발견하는 일.
세계문학은 내게 언제나 '현실 너머'로 건너가는 문이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내 일상의 무게를 살짝 벗고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음 한편에서 자꾸만 속삭임이 들렸다.
"왜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멀리 두었을까?"
돌아보면, 한국문학은 내게 '시험의 언어'였다. 줄거리를 외우고 주제를 분석하며 감정을 차단한 채 기계적으로 답만 찾아야 하는 테스트에 가까웠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내게 시와 소설은 채점을 위한 텍스트였고 문학은 늘 정답 안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그 언어를 애써 외면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 나는 더 이상 답을 고르는 아이가 아니다. 감정을 따라가고, 문장 사이에 잠시 멈춰 설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하루》
현직 작가님께 추천받은 세 권의 한국문학 단편집을 조용히 받아 들었고 다시 익숙한 언어 속 낯선 감정들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잊고 있던 감각들을 다시 만난다. 말 한마디, 눌러쓴 문장 하나, 문득 스치는 표정의 묘사. 그 모든 것들이 마음 안쪽을 조용히 건드린다.
세계문학이 나를 바깥으로 데려갔다면 한국문학은 나를 내 안으로 데려온다. 내가 살아온 계절들, 지나온 풍경들,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이야기의 결 속에서 느릿하게 살아난다.
이건 새로운 독서가 아니라 오래 잊고 있던 나와의 조용한 재회다. 한국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는 지금 나를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감정을 조심스레 다시 불러내는 일이다.
익숙한 언어 속에서 또 하나의 낯선 마음을 발견하는 것. 이 또한 내가 쓰고 또 쓰는 이유가 되는 거겠지. :-)
<도서 구매 목록>
1. 세계단편소설 45
2.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3.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4. 하루
● 더 높게 날아오를수록 날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 작게 보일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 어떤 사람이 남들과 속도를 맞추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그들은 사람들이 함께 모였을 때 짧은 침묵이 대화를 훨씬 낫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걸리버 여행기, 조너선 스위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