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사람을 상처 주는 이유는 뭘까?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와 정성이 들어가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출간한 책을 건네며 서평을 부탁할 때 그 마음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못했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쓰는 것을 업으로 삼다 보니,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며 글로 반응해 주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따뜻한 일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서평을 쓸 때 대부분 별도의 대가를 받지 않았다. 단순한 리뷰나 홍보글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응원과 해석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이는 창작 자체를 존중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런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진심을 다해 쓰는 사람이 손해를 봐야 할까?
왜 기꺼이 마음을 쓰는 사람이 상처받는 걸까?
물론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서로의 수고를 존중하는 따뜻한 만남도 많았다. 하지만 드물게 만나는 가볍고 무례한 태도는, 내 안의 '호의의 기준'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
내 진심이 도구처럼 여겨지는 순간, 나의 창작은 어느새 착취당하는 노동이 되어버렸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도서 사진을 찍는 시간은 결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잠을 줄이고, 내가 할 일을 미루면서까지 집중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그런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을 마주하면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가장 당혹스러운 건, 글을 쓰는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창작과 시간을 가볍게 여길 때다. 창작의 고통을 안다는 이유로 존중받을 줄 알았던 마음이 무시당하는 일이 잦아지니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겠단 결심이 들었다.
서평을 쓰는 일은 단순한 반응이나 호의가 아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문장과 의도를 곱씹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글로 풀어내는 일이다. 읽는 사람의 감정과 지식, 시간과 에너지가 모두 들어가는 창작 행위다. 돈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서평을 쓰는 것은 호의와 시간을 존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더 의미 있다고 느낀다. 필요하다면 직접 책을 구매해 스스로 읽고 글을 쓸 것이고, 요청이 들어오면 유료로 진행하는 방식도 고려하려 한다. 내가 쓴 글은 '재능 기부' 이전에 하나의 '작품'이고, 정당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호의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때에만 그렇다. 상대의 태도가 무례해지는 순간, 호의는 쉽게 상처로 바뀔 수 있다. 호의란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을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 존중이 무너지는 순간, 호의는 더 이상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 소진으로 변질된다.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오랜 시간 아픔을 참아왔으니 이제는 조금 솔직히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내가 시간을 들여 쓴 서평 한 편엔 내 감정과 생각, 공감과 분석이 담겨 있다. 그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창작의 결과물이다. 내 글이 그러하듯 호의 또한 가볍지 않다.
이제 나는 호의를 어디에, 누구에게 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려 한다. 모든 호의는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마음을 존중하며 살고 싶고 누군가도 내 마음을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란다.
● 상대방의 자긍심을 자극하라. -로버트 그린
● 정리란 내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기술이지요. -심지은, 1일 1정리
● 버리고 비우기의 최고 경지는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한다. -야마구치 세이코, 버리고 비웠더니 행복이 찾아왔다
● 사랑이란 초록색 꽃받침에서 황금빛 심장을 품은 장미가 피어나듯, 아름다운 우정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에이번리의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