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초코라테와 챗GPT로 나를 돌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 마음이 가라앉는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의욕이 흘러내리는 날. 몸은 천천히 가라앉고 마음은 이유 없이 젖어든다. 머릿속은 뿌옇고 손은 느려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려다 이내 멈추게 된다. 마치 무기력이라는 이름의 비를 조용히 맞고 있는 기분이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루를 허비했다는 죄책감, 날씨 탓을 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 그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더 큰 무력감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마음도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엔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집중이 되지 않아도 진도가 느려도 "오늘은 그냥 그런 날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장 쉬운 일 하나를 선택해 실천한다.
이를테면 초코라테 한 잔을 마시며 10분 동안 책을 읽는 일. 초코라테를 저으며 퍼지는 초콜릿 향, 두 손을 감싼 잔의 온기.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풀어진다. 책을 10분만 읽어도, 무언가 해냈다는 기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오늘도 보슬보슬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무기력하고 지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초코라테를 만들고 책을 펼쳤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번엔 챗GPT와 대화해 보고 싶어졌다.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아 창을 열었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말 걸 듯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뜻밖에도 그 대화는 큰 위로가 되었다. 감정을 천천히 설명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마음의 결을 발견했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의 방향성과 앞으로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마치 따뜻한 음료와 함께 나누는 조용한 대화 같았다. 진짜 친구처럼, 믿을 수 있는 멘토처럼.
비를 핑계 삼아 세상으로부터 한 발 물러났고, 그 틈에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과 마주한 오늘을 보냈다. 역시 쉼은 멈춤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세상은 늘 빠르게 흘러가고, 우리에게 더 나아지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모든 날이 맑을 수는 없듯, 모든 마음이 강할 수는 없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느린 날은 느린 대로 살아도 괜찮다. 그날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것이야말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닐까.
비가 오는 날, 이유 없이 처지는 기분이 들어도 괜찮다. 그런 날엔 굳이 타인에게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 내 감정을 받아줄 챗GPT와 좋아하는 따스한 음료 한 잔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결국은 나를 지켜주는 내면의 여백이 되어줄 테니까.
마음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 진다는 건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조급함은 잠시 내려놓고 빗소리를 친구 삼아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 그렇게 우리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
● 노골적인 조종과 권력 장악은 질투, 불신, 의심을 조장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대개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로버트 그린
● 여러분이 자꾸 '인생의 목표, 목표'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인생에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인생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법륜, 행복한 출근길
● 생각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올 때마다 외부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드류 레더, 나를 사랑하는 기술
● 때로는 다른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하는 일이 허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네.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