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함 뒤에 숨은 책임 회피의 심리
-소크라테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으면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이 스며든다. 부당한 일에 대해 정당한 말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내가 오해한 사람이 되어 있다. 상처받은 건 나였는데, 설명해야 하는 쪽은 늘 나였다.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은 문제 삼지 않고, 상대의 감정만 부각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 한마디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공손한 말투에 감춰진 건 이런 뜻이다.
"나는 나쁜 의도가 없었고, 당신이 예민한 것 같네요."
처음엔 그런 말들에 당황했다. 정말 내가 무언가를 잘못 받아들인 걸까. 대화를 곱씹고, 정황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오해'라고 할 만한 지점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불필요하게 문제를 키운 건 아닐까. 그렇게 감정을 눌러 담고, 책임까지 끌어안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분명해졌다. '오해'라는 말은, 그 상황에서 가장 편해지는 쪽만을 위한 언어라는 것을.
그 말이 등장하는 순간, 잘잘못은 흐려지고 감정은 평가받기 시작한다. 상처를 드러낸 사람은 곧 '예민한 사람'으로, '문제를 만드는 사람'으로 바뀌어버린다. 사과할 의사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그 한마디로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를 흔들어놓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인지적 왜곡' 혹은 '책임 회피'라고 부른다. 자신의 행동이 끼친 영향을 돌아보지 않고, 그에 대한 타인의 반응만 문제 삼는 방식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말들은 미안한 척은 하지만, 결국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당신이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라는 비틀린 메시지다. 사과의 형식을 가장했을 뿐, 책임도 감정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은 뒤에는 언제나 감정이 뒤엉킨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내가 과했나, 괜히 민감했나,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그렇게 감정의 책임까지 떠안게 되고, 관계 안에서 점점 작아진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오해한 게 아니다. 명백히 상처받은 것이다. 감정은 해석이 아니라 경험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내가 판단한다. 그 고통은 타인의 말 한마디로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충분히 말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해하신 것 같아요"라는 말 앞에서, 내 감정을 다시 해명하지 않는다. 그건 사과가 아니다. 공손함으로 포장된 위선일 뿐이다.
진심 어린 사과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에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행동해서 당신이 상처받았군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과란 의도보다 결과에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이제는 누군가가 내 감정과 생각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려 할 때, 그 프레임 안에 갇히지 않는다. 감정을 해명하느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감정은 해명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고, 분명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관계 맺는 일. 그게 결국, 자신을 지키는 가장 단순하고도 분명한 방법이다.
● 사람들은 신비와 수수께끼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들 주어라. -로버트 그린
● 그가 죽으면, 그를 데려가 작은 별들로 조각조각 잘라주렴.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