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없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법

죄책감이 없는 사람의 뇌는 다르게 작동한다

by 윤채



공손한 말에 속지 말자

그건 양심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나누는 일이 왜 위험해질 수 있을까?



함께 이야기 나누고, 나눈 만큼 함께 걸어가리라 기대한 순간 가장 먼저 배제되는 사람이 되는 경험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웹소설을 쓰다 작품을 도둑맞은 적이 있었고,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사람에게 모임 아이디어를 빼앗긴 적도 있었다. 공유했던 아이디어가 내 이름 없이 기획으로 완성되어 나오는 걸 본 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아무 말도, 아무 미안함도 없었다.



물론, 아이디어라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되기 어려운 건 안다. 특허를 내지 않았으니 내 권리를 주장할 명확한 수단도 마땅찮다. 하지만 그것이 도둑질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분명 내가 먼저 꺼낸 것이었고, 나와의 관계 안에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도 그건 피해자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가해자가 무례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사과는커녕, 미안해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쯤 되니 도리어 궁금해질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

왜 어떤 사람은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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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마사 스타우트는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에서 말한다. 전 세계 인구의 약 4%는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지닌다고.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거나 내면화하는 능력 자체가 비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책감이 누구에게나 작동하는 감정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격적·인지적 발달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한 감정이다.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각이 없다. 그러니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는 능하면서도, 상대를 존중하는 감정은 없다.



양심 없는 가해자들은 좋은 기획이었고, 내가 더 잘 발전시킨 것뿐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대하는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그런 사람을 바꾸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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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윤리 안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작은 도움에도 "고마워요"를 먼저 말하지만, 누군가는 도움을 받고도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그 차이를 납득하려 하다 보면, 끝내 괴로워지는 쪽은 늘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양심이 비정상적으로 결여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나까지 망가질 필요는 없다. 아이디어는 또 떠오를 수 있다. 정 안 되면 챗GPT에게라도 물어보면 된다. 치사하고 치졸한 사람 때문에 내 기준과 기분을 무너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그 감정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양심은 감정이 아니라 인지 구조다.

양심이 결여된 사람에게 '미안함'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회로를 작동시키려는 일이다. 구제될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게 그 사람의 한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같은 사회, 같은 시간을 살아도 모든 사람이 같은 양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추천 도서 :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 마사 스타우트, 사계절


● 유연성과 적응 능력을 발휘하면 신적이고 불멸하는 듯한 인상을 풍길 수 있다. 당신의 정신은 여전히 생생하고 개방적이며 권위는 새로워질 것이다. -로버트 그린

● 앞으로도 그럴 거야. 에스텔라,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너는 나의 일부로 남을 거야. 나에게 조금 있는 선함과 악함의 일부로 말이야.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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