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못한 시간도 결국 사라지지 않는다
결혼과 신혼여행, 인생의 가장 화려한 궤적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빼곡히 수놓고 싶었다. 그것은 작가로서 당연한 욕심이자, 생의 가장 찬란한 정점을 활자로 기억해 두려는 본능이었다.
하지만 삶은 기록될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훨씬 괴로웠던 입덧은 일상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입덧약에 취해 잠의 늪으로 침잠하거나,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져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 일과의 전부가 되었다. 기록의 빈칸도 늘어가고, 몸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고달픈 임신 초기를 지나 중기에 접어들면 다시 펜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몸은 생각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했고 유리처럼 위태로웠다. 임신 전과 달리 하루 10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조차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향했던 20주 차 정기 검진이 뜻밖의 입원으로 이어졌을 때가 아직도 선명하다. 오랜만에 초음파로 아이와 만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검진이 끝나자마자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당일 입원을 했고, 멍하니 입원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울고 싶은 걸 꾹 참고, 누운 채 문장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복통과 어깨 통증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글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리하게 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는 대신, 기꺼이 이 시간을 편안히 환대하기로 했다. 글을 쓸 수 없다면 어떤가. 그 시간에 재미있는 것을 보고 배우며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 것을.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영상 콘텐츠를 틀어놓고 교양과 지식 속을 여행했다. 식사를 잘 챙기는 것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워진 내면에 새로운 감각을 채우는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유희였고, 내 몸을 온전히 돌보는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다. 고통과 두려움의 순간에도 의식적으로 노력한 끝에 얻은 값진 평온이었다.
겨우 퇴원 허락을 받고 돌아온 집은 정적인 공간이었다. 조산의 위험. 지금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탄생이 아니라 상실이 된다는 서늘한 진실 앞에 몸과 마음을 정갈히 가다듬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눕눕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문득 책장 한 구석의 <아티스트 웨이>가 떠올랐다. 이미 열여섯 번이나 탐독하며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던 그 책은, 창작의 멈춤이 결코 고갈이 아님을 일깨워줄 가장 다정한 친구였다.
직접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이끌까 하는 욕심도 잠시 들었으나, 지금 필요한 것은 타인을 돌보는 책임감보다 나와 뱃속의 아이를 향한 고요한 집중력이었다.
운 좋게 찾아낸 소모임은 적당한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를 인증하며 나누는 느슨한 연대. 고립된 침대 위에서 세상과 연결되는 다정한 통로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된다.
결혼 이후 기록하지 못한 무수한 날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삶에 아무 이유 없이 발생한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원고지 위에 가장 치열한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일상의 애정을 풀어내려 한다.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그리고 나와 연결된 작은 생명에게 가장 다정한 시간을 선물하며 천천히, 아름답게 내 삶의 페이지를 채워갈 것이다.
● 예술은 일종의 정신적 거래이다. 아티스트는 몽상가다. 우리는 저 멀리서 가물거리는 창조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셈이다.
-아티스트 웨이,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