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Oct 27. 2023

마흔일곱의 나이로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일

오늘 지금의 내가 감사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말하자

X세대의 가을, 그 시절 고등학생


나는 지금 이 나이, 마흔일곱 살의 몸으로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당황스러우면서도 희망차다. 나는 무엇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을 내린다. 수학에 대해, 화학이나 생물학 등 과학에 대해, 그리고 국어 과목에 대해 현재 내 실력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곤 한다. 이는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동기부여가 되는 일이다.




물론 이것은 내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가끔씩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곤 한다. 깨고 나면 나는 말한다. 악몽이었군! 나는 지금의 이 현실에 안도하게 되고 지금 주어진 내 나이와 환경에 감사하게 된다. 그 시절, 열일곱 혹은 열여덟 살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은 싫다. 물론 그때 그 낡은 책상에 앉아 그 단조롭고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일은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그러나 한번 지나온 장소로 다시 가는 것은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다.


꿈속에서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남자가 된다. 이 빌어먹을 낙천주의자는 강제로 맞닥뜨리게 된 그 상황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의지를 발휘해 계획을 짜는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나는 20세기 초로 돌아가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세워진 강제수용소에 갇힌다고 해도 상황을 판단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것만 같다.


왜 그럴까? 그때가 힘들었니?


꿈 이야기를 꺼내 놓으니 어머니가 물으신다.


그런 건 아니에요. 모르겠어. 왜 그런 건지. 보통은 군인 시절로 돌아가 입대하는 꿈을 꾼다는데, 나는 좀 별난가 봐.


그러게. 참 이상한 일이구나.


이상한 일이다. 왜 하필 늘 그 시절일까?


고등학생, 신축한 교정, 거친 모래가 깔린 커다란 운동장, 철봉과 농구대, 그물망이 쳐진 축구 골대, 무채색의 교실 창문과 철제 교문. 내 인생에서 가장 무의미하고 수동적이었으며 전망이라곤 없던 시절이 아닌가?


당시엔 자율학습이 있었다. 밤 11시에 자율이 아닌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생들이 우르르 학교 바깥으로 나오면 나는 거의 마지막에 나와 어머니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차로 20분 거리쯤에 있었다. 등교는 아침 7시까지였으니,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7시간 내외였으리라. 나는 잠에 들지 않은 채 라디오를 듣고 빈 노트에 낙서 따위를 끄적거리다가 새벽에야 간신히 잠들곤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X세대,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사람들이 이제 마흔을 넘겨 중년이 되었다.


나는 그 시절과 같은 영혼, 같은 정신, 같은 마음이나 몸은 이제 시들어가고 있고 다행히 어떤 것은 올바로 진행되어 - 더 정확히 말하면 나 스스로 바로잡은 것이다 - 성장하고 성숙해졌다.


나는 이 빌어먹을 꿈을 다시 꾸고 싶지 않다. 그 시절로 돌아가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은 책임을 다시 지는 것, 그것이 두렵다. 그러나 내 꿈을 나 자신도 어쩔 수 없으니 어쩌면 나는 다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계획을 세울 것이다. 낙천주의자가 되어, 마치 어떤 그럴 듯한 전망을 가진 듯한 남자가 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