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것은 일그러지고 변형되고 때로 제멋대로 부서지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고 마는데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혼돈 속에 사그라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흔적이 없이 조용히 어디론가 파묻히기도 한다.
나는 20여 년 전 일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당시 대학교 졸업반이었고 성적으론, 그러니까 여자에 관해서는 숙맥이자 삶에 있어서는 딱히 목표랄 것도 없는 정신적 부랑자였다. 이제 와 돌이켜보자면, 당시 내게 대학 생활이란 그저 어느 날 문득 일그러지고 변형되고 부서질 것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것이 혼돈이었는지, 아니면 침묵 속의 퇴장이었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간이란 거대한 힘에 의해 그 시절이 한 덩어리가 되어 쓸쓸히 뒤로 밀려났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 전체가 찰흙 덩어리 같이 크게 뭉쳐 날카로운 금속에 잘리고, 바람에 날리고, 어느 결에 여기저기 흩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마치 잔해 더미 속에서 증거를 찾아 헤매는 이처럼 지금도 헤매는 중이다. 나는 여전히 이 세계 어딘가를 정처없이 떠돌고 있다. 왜일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그 시절과 내가 여전히 굵은 밧줄 같은 것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저 시간 속에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을 뿐 당길 수도 이쪽으로 끌 수도 없는 그런 밧줄로. 그런 생각은 문득 떠올라 내 생각을 잠식한다. 내가 밧줄로 연결되어 있는 한 나는 어디로도 홀연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로 놔두면 그 문제 때문에 자유를 박탈당할 수 있다.
그 밧줄에는 여러 장면이 매달려 있다. 늦은 오후 검푸른 하늘과 정적에 휩싸여 있는 낡은 대학 건물, 길 위에 수놓인 노란 플라타너스 잎사귀나 기숙사로 이어지는 숲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교정 뒷산에서 무언가를 태우는 듯한 짙은 냄새... . 쌀쌀한 날씨에다, 사회대 뒷편 얕은 동산 중턱에 거의 숨어 있다시피 지어진 록밴드 동아리의 오두막에서 저녁이면 울려퍼지곤 하던 합주 소리. 당시 우리들은 교양 수업시간에 다뤘던 키에르케고르나 니체 철학,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 따위보다 너바나, 폴 잼 등의 록이나 방금 공개된 힙합에 더 끌렸다. 닥터마틴 구두에 딱 붙는 진이나 배기 바지, 플란넬 셔츠를 입었고 온라인 데이트 플랫폼이 막 등장했다.
그 풍경에서 서른 명이 한꺼번에 지워졌다. 그들은 홀연히 사라진 것이거나 긴 안목에서 보자면,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죽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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