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좁은 동네에서 살았다. 1980-90년대는 성장과 풍요의 시대였다. 그런 만큼 내 어린 시절도 가난이나 궁핍 같은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로웠고 특별히 어머니는 자식 키우기에 올인하려 열심히 일했다.
대한민국은 반도국가이면서 사실상 섬이다. 북쪽 지상길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남북이 갈라지면서 사실상 문이 잠겼고 타국으로 가려면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야 한다. 외부와 연결이 끊긴 채 살아 온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우린 좁은 터 안에서 경쟁, 경쟁, 경쟁하며 살아왔다. 각자도생이 지금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문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린 타자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고 사회가 구원해 줄 길은 꽉 막혀 있는 느낌이다.
눈을 돌려볼 수 있다면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갈 때 가장 먼저 할 것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내가 발 붙이고 사는 땅이 어떤 곳인지, 나는 누구인지, 뭘 할 수 있으며 어떤 전망이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할 일은 외부 세계를 탐험하고 정보를 얻는 것이다. 지구는 넓고 여러 형태의 공동체가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다. 외부 세계와 나 간의 비교는 내가 삶의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더 나은 사회가 있는가? 예스다. 더 나은 환경이 존재하는가? 예스다. 내가 도전해 볼 만한, 내 운명을 걸고 짐을 짊어질 가치가 있는 세계가 있는가? 예스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47년째 사는 중이나 알면 알 수록 이 사회,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교육은 황당할 정도로 엉망이고 부의 편중, 불평등은 심각하며, 사회 전체가 집단 질병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지, 나만 살면 됐지, 하는 마음이 만연하다. 나는 그렇다 치고, 내 아이가 이런 사회에서 버티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저 끔찍할 뿐이다.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 나는 그들이 높은 지능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학습을 잘 해야 한다. 남을 이겨야지, 명문대를 가야지, 하는 식의 학습 말고. 천천히 할 걸음씩,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에 만족할 줄 아는 학습을 하고, 남과의 피 비린내 나는 경쟁이 아닌 협력하고 공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
그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 없이 존재할 수 없고 타인의 도움은 누구나에게 필수적이다. 남을 돕고 동시에 나 역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나는 그들이 학습과 일을 통해 긍지와 행복, 성취감을 느끼며 자연을 가까이 두고 충분한 여가를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챙기고 이웃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나가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것, 새로운 타지에서 학습하고 일을 하는 것, 대찬성이다. 세계는 넓고 광활한 대지가 있지 않은가? 출생국에서 삶을 살고 죽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내 아이들이 캐나다에, 영국에, 홍콩에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소통하며 더 큰 존재, 더 높은 이상과 야망을 품으며 그것을 좇아 노력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세계 시민, 딸들이여, 세계 시민이 되어라. 좁은 땅, 갇힌 공간은 정신적 감옥이 될 수 있다.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봐라. 높은 공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내가 야망을 품고 도전할 공간이 얼마나 광활한지 느껴 보라. 두려움 없이 나아가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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