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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을 때린 아이의 생각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by 김정은

큰 딸애가 중학생이 된 것은 우리 가족 전체의 기쁨이었다. 잘 자라주었구나, 그게 내 마음이었다. 한편으로, 걱정이 들기도 했다. 요즘 세상, 너무 험해서 딸애 주변을 둘러싸고 있을 딸애의 친구들, 반 동기들, 짝꿍이 어떤 아이들일지 궁금했다. 되도록 착한 아이들이었으면, 순수하고 밝고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물론 그 바람은 그리 쉽게 충족되지 않았다. 딸애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구 관계로 애를 먹었다. 물론 내 딸애도 보통 아이는 아니다. 이미 6살 때부터 친구 관계 갈등을 겪었고, 사람 일에 대해서라면 나름 산전수전 겪은 아이다. 따돌림이나 왕따, 집단 괴롭힘, 폭력 등의 문제, 유소년기 혹은 청소년기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유별나다.


원인은 아주 명쾌하다. 성적지상주의다.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또래와 건강하게 어울리고 사회 속에서 제대로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은 지금 공부, 공부, 공부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받고 있다. 사실상 놀이도 없고 운동도 없고 (가족, 친구, 사회) 관계는 자연히 병이 들어 있다. 청소년 자살률이 OECD 1위를 기록한 지가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래서, 내 딸애들이 크는 환경이 더욱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사고가 터졌다.


내 큰딸애의 짝꿍 남자애는 (딸애 말에 의하면)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는데 내가 들은 것들을 종합해 보면, 소심하고 대인관계는 불안정한 상태인 데다 (주로 여자애들을 향해) 폭력 기질을 보이고 공감 능력도 상당히 떨어지는 아이다. 그 아이가 어제 교실에서, 내 딸애의 머리를 빗자루로 내리쳤단다. 이유는 딸애가 너 왜 허락도 없이 과자 집어 먹어? 라고 말했다는 데 있었다. (그 녀석은 딸과 딸의 여자친구들이 모여 과자를 먹는데 아무 말 없이 와서는 과자를 한 움큼 집어 먹었다고 한다)


왜 너는 갑자기 와서 허락 없이 과자를 먹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 했다고 들고 있던 빗자루 채로 친구의 머리를 내리친 녀석의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고 폭력적이다.


내게 이 일로 전화를 건 담임은 그 녀석에 대해 한참 장광설을 늘어놓더니 한다는 말이,


내일 그 아이와 활리(내 딸)를 불러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게요, 였다.


나는 단호하게 담임 선생에게 말했다.


그 녀석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담임 선생에게 내 말은 조금 무례하게 들렸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른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있다. 아이가 명백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이는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에게 그 잘못의 본성에 대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단호한 언어와 태도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 많은 어른들이 이 부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잘못된 행동 앞에서 아이는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권리가 없다. 꾸짖고 어른의 언어로 야단쳐야 한다. 이 역할을 감당해 내지 못하면 부모의 의무, 선생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는 성장할 수 없다.


하여, 내가 직접 아이와 통화해 단호한 언어로 잘못을 지적해 주고 스스로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잘못을 확실한 단어를 사용해 인정했고, 스스로 바로잡을 것을 약속했다.


내일, 분명한 언어로 활리한테 사과해. 그럴 용기가 있니?


네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고 안내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 경험과 교육, 훈련의 측면에서 그리고 도덕과 윤리, 지적 차원에서 어른은 아이를 압도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그래야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


내 주변에 사람을 물고 험하게 짖을 준비가 되어 있는 강아지가 수십 마리, 수백 마리씩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끔찍한 일이다. 폭력성이 제대로 교정되지 않고 방치된 채 돌아다니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끔찍한 존재다. 이들은 응당 받아야 할 훈육을 받지 못해 버릇없는 피터팬으로 남아 있는 아이들이다. 과연 이러한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이런 아이들을 존중하고 인생과 성공의 기회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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