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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47세 남자

by 김정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꽤나 불운한 청년기를 보냈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았어, 그렇게 읊조리며 회고할 만한 시기였다. 누군가는 좋은 환경을 타고 나지만 그렇지 못한 이가 훨씬 많다. 나는 내가 물려받은 조건에 감사한다.


스물다섯 살 이후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지만 수중에는 천 원짜리 한 장조차 없는 날이 허다했고 내 삶이란 걸 확실한 형태로 가져 보지 못했다. 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하길 원했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됐다. 공부가 좋았고, 더 깊이 더 많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참 열심히 살았다, 나.


우리집은 빚이 생겼고, 나는 사실상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사는 집의 가장이었다. 이런 일도 있군, 하며 여러 일을 경험했다. 길거리에 선 채로 꽉 막힌 도로에 늘어선 차량의 운전자를 상대로 간식을 팔거나 건물 막노동, 일용직 노동자 일을 전전하다 마지막에 학원 선생으로 정착했다. 그렇게 7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쓸 만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보람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심지어 어떻게 전달하는가, 그 방법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사회 어른들은 이걸 잘 모르는 듯하다.


DALL·E 2023-11-20 05.22.03 - A 20-something-year-old man working in a labor-intensive job site. He's wearing a safety helmet, protective gloves, and a high-visibility vest. The ma.png


내가 겪은 어려움, 말로 하면 끝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가, 에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가장 완벽한 형태의 가난과 고난 속으로까지 은밀하고 부드럽게 파고드는 연기 같은 것이다 - 실제로 그러하다. 1회용 믹스 커피 한 잔을 만들어 집 앞 공원으로 나가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세상이 전부 나를 향해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늘 음악과 영화가 곁에 있었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할 수 있었고 틈날 때마다 운동을 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DALL·E 2023-11-20 05.22.41 - A man running in the rain, capturing the dynamic movement and intensity of the moment. He is of South Asian descent, in his 30s, with short black hair.png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나는 고독,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일하는 시간, 예배드리는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거의 대부분 혼자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내 영혼이 자연의 신비로부터 세계의 아득함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기회였다. 아버지는 병을 얻어 10년 간 병상에 누워 있다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비교적 건강했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게 아름드리 가지를 하늘 위로 드넓게 펼친 채 든든히 버텨 주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가장 따뜻하고 온화하며 믿음직스러운 사랑과 신뢰를 보내준 이가 바로 어머니였다. 아마도 그런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강가의 돌처럼 이름없이 의미 없이 굴러다니다 지금쯤 어디 한 군데 쳐박혀 있었을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굳건한 영혼은 다른 사람에게 무한한 영향을 미치고 다른 이를 성장하게 하며 야망을 갖게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내 어머니로부터 배웠고, 그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DALL·E 2023-11-20 05.23.55 - An elderly mother, embodying deep love and affection for her son. She is of Caucasian descent, with white hair and a gentle, loving expression on her .png


나는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다. 20세기는 세계에도 인류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많은 일이 일어난 때이다. 세계대전이 있었고 냉전이 있었으며 한국전쟁이 있었다. 전쟁과 이념이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시기다. 그리고 21세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나 개인적으로는 정규직 직장을 얻었고 결혼을 했고 두 아이가 생겨 가정을 이뤘다. 나는 힘든 시기를 건너왔지만 그 이후엔 약간의 재정적 어려움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무난한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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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 내 이야긴 걸?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 노인이 겪은 고통과 역경은 내 경험과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있었고 말할 수 없는 수모, 어려움을 감당해야 했다. 그가 독일인 군인에 의해 잡혀가게 된 이야기는 슬프다 못해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 책의 마지막은 감사로 끝이 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감사의 주된 동기는 가족이다. 이 점에서 100세의 에디 제이쿠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이미 늙어버린 나 자신을 대면하는 것 같은 감정을 갖게 됐다.


스크린샷 2023-11-20 오전 5.26.19.png 비르케나우(제2 아우슈비츠) 역에 도착한 유대인들.



'훌륭한 지도자를 둔 독일은 위대한 나라였다. 그러나 악한 지도자를 둔 독일 국민은 괴물이 되어버렸다.'

-55p


정치란, 군중이란 그런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군중을 신뢰하지 않는다. 거짓도 악행도 군중 속에서 더 쉽게 자행되고 은폐된다. 인간은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을 감추면서 군중과 함께 행동하고 말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상 일어난 거의 대부분의 악행은 군중 가운데 배태됐다. 이러한 풍경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 정치다. 정치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비열함과 거짓, 모략, 선동이 난무하고 동시에 도덕과 윤리, 사회정의 운동이 펼쳐지기도 한다. 선과 악이 치열하게 부딪히고 공존하는 공간, 곧 정치다. 사람들은 대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데 이는 언제든 내 곁에 악마가 자리를 잡고 나를 괴롭힐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군중 속에 섞여 나를 숨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에 따른 행동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정치를 잘 활용하면 나 자신을 찾고 목표를 정립하고 이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정치의 본성을 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장 실패한 교육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인생에는 반드시 고통과 고난이 들이닥친다는 것, 그러나 자신이 똑바로 서 있기만 하다면 할 일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행복이 마치 작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를 유혹할 것이라는 것.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감정을 일으키며 나를 움직이도록 만드는 동기는 가족, 타인일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모든 형태의 악의와 어둠에 맞서 저항하고 나를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 이것들 이외의 모든 정보, 지식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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