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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Nov 24. 2023

나는 썩고 얇은 베니어판이야, 하지만 널 위해서 버텨

안녕. 이제 나를 토토라고 불러주길 바라. 토토는 20년 전 우리 가족이 함께 기르던 강아지였어. 그 녀석에게 토토란 이름을 붙여준 건 나야. 왜? 내 별명, 나 스스로 나를 칭하는 이름, 내가 불리고자 했던 명칭이 토토였기 때문에 나는 강아지가 우리집의 새 가족이 되자마자 토토라고 이름 붙여 주었어. (토토는 원래 영화 '시네마 천국' 속 주인공 이름이야.)



영화 '시테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와 토토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몇 살인지 알 수 없지만 넌 나를 토토라고 불러도 돼. 토토!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내가 대답할 거야.


우선 나는 네가 이 세상에 나와 어떤 형태로든 상처받았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할게.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어. 너무 힘이 들고 기댈 곳이 없고 말할 데도 없다면, 이 글을 읽어 줘. 난 그런 널 위해 이 글을 쓰는 거니까.


네 영혼이 치유될 때까지 이 글을 읽어주길 바라.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넌 이 글을 읽으면 돼. 우리 사이에 맺은 계약은 이것이 전부야. 나는 쓰고 넌 읽는 거야.


우선 고마워. 이 글을 읽어주다니!





난 마흔일곱 살이야. 늙었다면 늙은 거고 젊다면 또 젊은 나이지. 넌 몇 살이니? 나는 남자이고 직업이 있고 딸이 둘이야. 다행히 아내가 있고. 나는 한 가족의 가장이고, 어머니의 아들이고 누나의 남동생이야. 넌 누구니? 넌 누구의 무엇이고 네 곁엔 누가 지키고 있지? 난 그게 궁금해. 알고 싶어. (말해 주고 싶다면 댓글을 달아 줘.)


우선 이걸 말할게. 세상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 하나는 운이 좋은 인간, 다른 하나는 운이 없는 인간. 철저히 행운이란 관점에서만 보자면 이렇게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어쩌면 넌 운이 없는 인간일지도 모르겠어. 고아이거나, 부모가 이혼했거나 동생이 죽었거나 지금 혼자 있거나 돈이 없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겠지. 앞날이 막막하고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수도 있어.


그래, 넌 (세상 어디에선가) 무엇으로부터 상처받은 영혼이야.


세상의 상처엔 크게 두 종류가 있어. 하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상처,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책임이 아닌 상처. 너의 상처는 어느 쪽이지? 나는 두 번째 상처, 그러니까 너의 책임이 아닌 상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게. 부모가 없거나 학벌이 미천하거나 이제 막 스무 살인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혹은 십대인데 갈 곳이 없다면 그건 네 책임이 아니야. 그건 널 낳은 사람들, 혹은 이 사회, 공동체의 책임이야. 그러니 네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겠지. 그렇지?


모든 인간은 부모가 필요해. 왜? 사랑받아야 하기 때문이야.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날 온전히 믿어주고 지지해 주고 아무 이유 없이도 따뜻하게 안아줄 그런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신은 부모를 만든 걸 거야. 그런데 마땅히 있어야 할 부모가 없다면? 아니면, 부모가 있는데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땐 어떡해야 하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면, 마땅히 받아야 할 지지와 포옹을 받지 못하면, 마땅히 있어야 할 믿음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인간은 상처 받아. 그 상처는 너의 책임이 아니야. 그건 부모의 책임, 어른들의 책임, 어쩌면 널 대책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상처받도록 놔 둔 신의 책임이야.






그러니, 혹시 네가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위로를 보내고 싶어. 넌 운이 없었던 거야. 이 세상에 딱 두 가지 부류 중 운이 없는 쪽에 속했던 거지.


네가 가진 고민이 있다면, 네가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다면, 지금 무언가 널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나에게 털어놓아 줄래? 모든 걸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 이야기해 줄게. 난 적당이 나이를 먹었고 이런저런 경험을 했어. 그래서 얻게 된 아주 적은 깨달음이 있으니 혹시 너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운이 좋든 나쁘든 어느 쪽이든 인간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란 걸 말할게.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너에게 도움을 주는 이가 부모일 수도 있고 형일 수도 있고 선생일 수도 있고 ... 어쩌면 나, 토토일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기대.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의지하고, 하소연 할 데가 필요하면 털어놓으렴.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


이 편지는 계속 쓰여질 거야. 널 향해서. 세상의 운 없이 태어난 모든 영혼을 위해서.


널 만나게 되어서 기뻐. 아, 그리고 이걸 말할게. 나는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야. 다만 너의 친구가 될 수 있고 형이 될 수 있고 이웃집 아저씨가 될 수도 있어. 아무튼, 난 너에게 편한 누구, 기댈 수 있는 무엇이야. 물론 난 썩고 얇은 베니어판 같이 연약한 데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의 존재이지만, 널 위해 안간힘을 써 볼게.


난 계속 글을 쓰며 여기 있을 테니 언제든 들러서 날 읽어 줘. 고마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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