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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 타인과 사물

by 김정은

좋은 퇴직 후 삶에 필요한 것을 말할 때 나는 3가지를 꼽겠다.


1. 자기 자신과의 좋은 관계

2. 타인(세계)과의 좋은 관계

3. 사물(지식)과의 좋은 관계


단절이 아니라 연결


퇴직을 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퇴직한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보면 단절인 듯하다.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자신과 익숙한 공간, 시간과 단절되는 것이다. 그리고 낯선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익숙한 공간과 시간,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사물과 결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오면, 마찬가지이리라.



DALL·E 2023-11-28 14.57.25 - A South Asian mountaineer standing triumphantly on a high peak of the Himalayas. He has a strong physique and an expression of joy and accomplishment.png



알맹이 상태의 나를 아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은 자기 자신을 순전한 맨몸으로 대면할 필요가 있다. 명함 떼고, 이름표 떼고 교복 벗고 알맹이 그대로인 자기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들 각자는 대개 순전한 형태의 자아가 아니라 회사 이름, 직함, 직위, 직종명 등으로 정의되기 쉽다. 이것이 착각을 일으킨다. 삼성에 출근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을 삼성이란 기업과 동일시한다. 그러니 그 회사 문을 나오는 순간 크나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실은 자신이 생각해 온 것과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과 대면하면 알맹이 상태의 나를 볼 수 있다. 내가 가진 능력, 나의 취미,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무엇,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걸 인지하기까지 누구나 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DALL·E 2023-11-28 14.58.17 - A Caucasian man enjoying solitude in a serene natural environment. He has a peaceful expression, surrounded by beautiful forest or lake scenery. He is.png



고독은 매우 쓸모있는 삶의 도구


자신을 만나기 위해 나는 혼자 있기를 추천한다. 산에 혼자 오르거나 혼자 달리거나 혼자 걷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 말이다. 즉 고독이다. 고독을 내 친구로 삼지 않으면 자신을 만날 방법이 없다. 고독은 나와 친근해지는 시간이다. 나를 알아가고 나라는 인간을 낱낱이 해부하는 공간이 바로 고독이다. 그러니, 고독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


고독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시공간이 바뀌어도, 익숙한 사람들과 결별한다 해도 충격파가 적다. 어차피 혼자였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낯선 환경에 담담하게 적응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일과 업무에 쫓기다 보면 나를 발견할 기회란 줄어드는 법이다.


개인의 성장 역시 고독 속에 이뤄지는 것이다. 성장은 어디에서든 나 자신을 쓸모있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따라서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은 자,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건강한 타인(세계)과의 관계는 곧 나 자신을 의미한다.


타인(세계)과의 관계도 제대로 맺어야 한다. 나를 아는 것만큼이나 타인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과 신, 정보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과학이 있기 전 세계는 신이 구축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타인과 자아를 해석하는 방식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과학이 등장한 이후부터 신은 그 자리를 점점 잃었다. 이야기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DALL·E 2023-11-28 14.59.36 - A Black man enjoying tea with friends, in a lively and friendly setting. They are dressed in comfortable and casual attire, in a cozy cafe or a living.png



전통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쓸모가 있다. 인간과 자연이 구축해 온 질서, 즉 전통은 거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전통을 거부하는 것만큼 대책없고 무모한 게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공부할 가치가 있다. 법체계와 문화, 건축과 정치, 도덕과 철학이란 대체로 신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기독교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정신과 물질 구축에 거의 대부분 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무신론자 역시 사실은 신의 체계 아래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전통이나 신을 경솔하게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무시나 경시는 정확히 제대로 알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나와의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되어 있어야 비로소 타인(세계)과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이 둘은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취미가 있는가?


나는 일주일에 한번 조기축구를 한다. 거기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이런 활동이 많다면 퇴직 후에도 삶이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 내가 현재 속한 집단과 무리 바깥에서 질 좋은 관계를 많이 형성해 놓는 것은 퇴직 후를 대비해 유익하다.


마지막으로, 사물이다. 내가 인지하는 자연과 집과 정원, 공원과 광장, 그리고 사적인 나의 물건들, 예컨대 자동차나 펜, 옷가지와 의자, 구두나 넥타이 같은 사물은 곧 나를 상징한다. 이것은 익숙한 것들이다. 나는 자신을 표현하는 사물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여행지, 친근한 카페, 자주 가는 식당, 편한 신발과 트레이닝복, 안경과 이어폰, 그런 것들은 불안을 희석시키고 안정감을 준다.



DALL·E 2023-11-28 14.59.39 - A Black man enjoying tea with friends, in a lively and friendly setting. They are dressed in comfortable and casual attire, in a cozy cafe or a living.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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