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정도 된 것 같다. 큰애가 6학년 마치고 중학생이 되는 겨울, 큰애를 데리고 수학 학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몇 군데 들어가 분위기를 본 후 마지막 들어간 학원에서 상담을 하고 학원을 결정했다. 집에서는 차로 15분 거리였다. 아이가 걸어다니기엔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긴 거리다.
내가 학원을 결정하는 기준은 한 가지였다. 아이에게 사실상 1대1 교육이 가능한지. 선생님이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고 플랜을 통해 장기 목표를 짜고 동행할 수 있는가, 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학원은 후미진 골목 5층 건물에 있는 학원으로 사실 시설은 낡고 선생님도 몇 명 없었지만 내 까다로운 기준은 충족시킨다고 판단했다. 내 딸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고 관찰하고 장기 플랜을 짜 동행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찾아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렇게 이 학원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는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강행군을 감당해 냈고 큰애는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여정의 주도자로서 책임을 다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목요일 저녁, 아이가 문득 하교 후 선언을 했다.
나, 학원 안 다니면 안 돼?
나는 깜짝 놀랐다. 힘들다, 지겹다, 재미없다, 쉬고 싶다, 따위의 말은 자주 들었던 터라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짐작했는데,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
그냥 혼자 해 보고 싶어. 혼자 해도 할 수 있을 을 것 같아.
그래?
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결정에 훌륭한 조언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답이다. 무슨 공부건 시간이 걸려도 혼자 하는 것이 정답이다. 누구보다 나, 이 사실을 잘 안다. 20대, 학원 선생으로 7년 동안 일하면서 아이들의 학습 행태를 관찰하고 교육자 경험이 나름 있는 나로서 가진 철학이다. 긴 흐름으로 널리 보는 안목으로 보면,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맞다.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낸 것은 낮은 성적에 걱정하는 아내와 딸 자신 때문이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하면, 방법이 생긴다는 게 내 생각이었으나 나는 조급해 하는 두 사람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학원을 보낸 건데. 아이 스스로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친 모양이다.
나는 밖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활리가 학원 그만두고 싶대.
왜?
혼자 해 보고 싶대. 지쳤대. 힘들대.
아내, 물론 내 말이 깜짝 놀란다.
일단 오늘은 쉬게 하고 생각 좀 해 보자.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딸과 아내를 안심시켰다.
큰딸은 부모에게 SOS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는 아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부모와 자녀 간 신뢰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큰 애가 표정이 밝다. 학원 선생님께 긴 카톡 메시지도 스스로 보낸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따위의 내용이다. 인사는 할 줄 아네, 녀석 잘 컸군. 나는 생각했다.
저녁 나절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두 딸내미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 중이었다.
아빠, 지금 다이소 갔다 왔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사러. 어때 예뻐?
응. 예뻐.
학원을 그만둔 지 하루 만에 큰 아이의 표정은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예닐곱 살 때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되찾았고 동생과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그래, 저거지.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20세기 교육 방식을 더 강력하게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있는 것
아이는 물건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이건 더 이상 못하겠어!
이렇게 말하는 내 딸이 대견했다. 자기 감정을 체크하고 문제가 있음을 말할 줄 아는 것, 한 인간의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이 신호를 신중하고 예민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학교 1학년, 열네 살짜리에게 쉼이라곤 없는 강행군을 1년 간 시켰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9시가 돼야 끝나는 학습, 말이 학습이지 고문 혹은 학대였다. 물론 내가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니 아내와 내 마음이 안심이 되긴 했다. 아이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은 부모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것은 아이에게 독이나 다름없다. 청소년기는 뇌가 여무는 시기이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체험을 통해 자신과 공동체를 알아가는 탐색하는 때다. 그런 시기를 1평도 안 되는 작은 책상 위에 묶어두는 방식은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아이는 곧 겨울 시험을 치를 것이고 내년 1월이면 방학을 할 것이다. 그때까진 시간을 갖고 아이의 학습에 대해 대안을 짜내려 한다. 실험은 1년으로 족하다. 아이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번아웃이 왔다. 아이는 늘 지쳐 있었고 활력이 없었다. 그러니, 그건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고 나는 결론내린다.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결국 부모의 헌신이다. 부모가 시간을 내야 하고 아이와 함께 동행해 주어야 한다. 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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