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제 저녁 분식과 치킨을 먹으면서 내가 건넨 말에 큰 딸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활리가 이번에 시험을 한번 쳐 보니까 느낌이 어때?
(한참 생각하더니) 내년까지는 시험 얘기는 꺼내지 말기로 하자.
그럴까?
나는 조금 겸언쩍어졌다.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시험이 큰 스트레스가 된 모양이군.
나는 알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이 치르는, 요즘 중학교 1학년생이 치는 시험은 얼마나 어려운지. 혼자 공부해서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지. 왜냐하면 아이의 2학기 기말고사 성적이 아내나 내가 기대했던 성적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를 믿는다.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고, 대비했고, 자기학습 위주로 공부했는데, 나는 그 사실을 아는데, 그런데도 성적이 7-80점을 웃도니 조금 놀란 게 사실이다.
아이의 성적 때문에 아내는 큰애와 크게 다퉜다. 논쟁의 범위가 단지 성적을 넘어 아이의 생활 습관, 지각 문제, 동생과의 관계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너는 왜 동생한테 그 모양으로 구니?
너, 맨날 지각하는 걸 보니 (떡잎부터 노랗다)... !
맨날 핸드폰만 보면서 무슨 공부를 한다고 그러지?
아내의 주장의 요지는 이런 것이다. 물론, 나는 아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아내는 큰애에게 큰소리를 질렀고, 심지어 (큰애가 동생을 때린 벌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꿀밤도 때린 모양이다. 아내와 큰 딸은 제대로 사이가 틀어졌다.
지난 주말, 나는 큰 딸과 함께 동네 도가니탕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깊이 나눴다. 국을 떠 먹던 아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내가 뭔가를 잘하지 못하면 날 사랑해 줄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아. 내가 잘하는 게 없다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엄마는 마음의 병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나중에 의사가 되거나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엄마의 병을 고쳐주고 싶어.
아이의 말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엄마가 마음의 병을 안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점, 자신이 잘 못하면 엄마는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점, 그리고 자신이 훗날 심리학 혹은 의학을 공부해서 엄마의 질병을(그런 게 있다면) 치유해 주겠다는 포부를 품은 점 등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쭙잖은 말로 아이를 위로하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 아이가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단지 부모의 태도에 대응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그것까지 생각이 미친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이 녀석,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넌 잘 자라고 있어. 아빠는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네가 엄마, 아빠를 뛰어넘어서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점,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 활리 스스로 그 점을 믿어야 해.
큰 애와 밥을 먹고 쇼핑몰에 가서 운동화, 점퍼 등을 구경했다. 마음 같아서는 뭐라도 하나 사 주고 싶었는데 아이는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주스 하나를 마셨고, 화장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중1, 그래, 주변 친구들이 화장을 하기 시작하니 내 딸애도 친구 따라 화장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부쩍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직은 아내가 크게 반대해서 못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중1에 하나 고1에 하나 그게 무슨 큰 차이가 있는가. 단지 자신이 충분히 성숙했고, 충분히 자랐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내년까지는 시험 이야기 하지 말자.
아이의 말을 지켜줄 생각이다. 한국이란 땅에 태어나 유독 지옥 같은 교육 환경과 과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딸애가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 세계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고 사랑받으며 크고 있는데 내 아이는 자유와 체험을 박탈당한 상태로 나아가 사랑받을 권리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니 안쓰러운 것이다.
나라도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한다. 나는 내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고 나름대로 애써 실천해 왔다. 아이가 클수록 그 일이 점점 힘에 부친다. 아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는 나름대로 잘 버텨 주고 자신의 책임을 지고 있다. 다만 아내가 초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주변의 아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청소년기 기억을 더듬으며, 자기 아이를 비판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아이를 챙기는 것보다 아내를 챙기는 일이 점점 버겁다.
이제 곧 아이들은 겨울방학을 맞으리라.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게 해 주고 싶다. 큰애는 벌써부터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복싱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다시 치고 싶단다. 나는 그렇게 하라고 말해 주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규칙을 준수하도록 훈육하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명령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아이의 자율성과 자유, 유능감에 신경 써 주어야 한다. 이것이 균형을 잃는다면, 그것 자체로 실패한 훈육이리라.
아이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 바로잡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일이 점점 더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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