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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를 거부해 자퇴를 시켰더니

by 김정은

회사 선배 아이의 이야기다.


자퇴 시켰어. 고1때.


선배는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지금 고3 나이 됐으니까 검정고시 쳐야지.


혼자서 공부를 한 건가요?


그렇지.


학원은?


아니, 안 다니고. 혼자서.


요즘, 내신 성적 관리 때문에 자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기사는 봤어도, 사실 학교를 그만두기가 쉬운 일은 아니니 나는 궁금해졌다.


아이가 왜 자퇴를 하겠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커서 그런지 적응을 잘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 중학교 들어갔을 때도 자퇴하고 싶다고 그래서 간신히 설득했거든. 그래도 중학교는 다녀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또 그러는 거야.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서 이번에는 그냥 자퇴 시킨 거지.


그렇군요. 그래서 뭐 하고 싶은 게 있다던가요?


선배의 아이는 딸, 무남독녀다.


프로그램 개발자 하고 싶대.


컴퓨터를 잘하는 모양이죠?


내가 물었다.


그게 아니라, 자기는 다른 사람들이랑 말 섞고, 공동으로 하고 그런 게 싫대. 워낙 낯가림이 있고, 사람이랑 어울리는 걸 어려워 해. 혼자 키워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해. 그냥 자기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대. 모르겠어, 이 길이 맞는 건지.


선배가 원하는 건 어떤 건데요?


나는 그냥 정해진 틀 내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규범 내에서 직장 생활 무난히 하길 바라지. 그게 안전하니까. 근데 얘는 특별하게 굴어서 걱정이야. 이게 맞나 싶고. 잘하는 건가, 모르겠어.


그렇군요.


자퇴 시키니 아이가 좀 만족스러워 하던가요?


몰라. 아직 어려서 뭐가 맞는 건지, 어떤 게 중요한 건지 그런 개념이 없는 것 같아.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선배는 걱정이 큰 모양이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물론, 나였다면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그리고 아이에게 더 나은 길을 제시했으리라. 학교를 다니는 것이 최우선이나 그게 아이에게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만들어졌고, 각자 길이 다르다. 부모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정해진 답은 없다. 아이에 맞게, 사람의 특성에 맞게 가장 좋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 보통은 이게 잘 안 되기 때문에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 그게 보통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제도, 기껏해야 100년밖에 안 된 것이다. 그 전에는 소규모로 한 명의 스승 아래 공부하거나 혼자 공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위대한 인간 중에는 독학으로 높은 지성의 경지에 다다른 이가 많다. 이것은 학교가 일반적인 제도로 정착한 20세기에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잘 관찰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아이가 행복한지, 즐거워하는지, 잘 따라가는지 예민하게 점검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혼자 끙끙 앓는 건 없는지. 그래서 부모와 자녀는 스킨십이 필요하다. 평소에 길을 잘 닦아 놔야 아이가 특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부모를 찾는다. 평소에 그런 관계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부모는 아이의 문제를 알 길이 없다. 아이와 거리가 생긴다면, 부모도 아이도 얻을 이익은 없다.


교육에 정답은 없다. 교육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맞춤형이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비유하자면 대량생산 체제다. 맞춤형이 아니다. 따라서 그 간극은 부모가 메워 주어야 한다. 아이를 관리하고 문제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원해서, 아이가 바라니까, 이런 말은 거의 대부분 헛소리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게 한다면, 아이는 햄버거만 먹고 핸드폰만 보며 인생을 낭비할 것이다. 아이가 바라는 것을 듣되 올바른 결정, 올바른 안내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부모에게 있다. 이것을 명심하자.


부모는 아이의 안내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듣되 결정은 부모가 내린다.


학교는 대량생산 공장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그 간극은 부모가 채워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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