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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여자로 느껴질 때

by 김정은

물론 아내는 여자다. 이것은 사실이다. 십수 년을 살다 보면, 이 사실을 잊을 때가 생긴다. 누구나 그러리라.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힘이다.


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20대의 풋풋한 여성이었다. 얼굴에 난 빨간 여드름을 하얀 화장으로 가린 것마저 예쁘게 보였다. 내 아내, 얼굴이 아주 미인형은 아니나 활력이 넘치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점을 높게 쳤다.


결혼을 한 후 아내 역시 내 라이프스타일을 따라왔다. 쇼핑을 즐기고 옷을 사고 멋을 부렸다. 그러면서, 더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모했다. 굽이 높은 힐을 신고, 몸에 붙는 브라우스를 입었다. 머리를 매만지고 향수를 뿌렸다. 나는 단정하고 꾸민 모습으로 출근하는 아내가 좋았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땐, 특히 주말엔 아내나 나나 짐승처럼 하고 산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눈꼽도 안 떼고 헐렁하고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입고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구는 때도 있다. 그러면 우리 둘 모두 어떤 성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그저 야생의 짐승 수준으로 내려간다. 이땐 어떤 성적 매력도 느끼기 어렵다.


대화가 줄어들고, 공감이 줄어들면, 관계는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대화의 기술이 있는 여자를 찾았다. 그리고 내 아내가 그런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 아내, 대체로는 무뚝뚝한 사람이다. 이걸, 뒤늦게 알았다. 한참 연애할 때, 나는 한두 번, 헤어지자는 말을 했었다. 이유는 모두, 대화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도무지 말을 할 줄 모르는 아내와 함께 인생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조금 이기적인 말을 하자면, 나는 가끔은 내가 말을 안 해도 옆에서 쫑알거리는 여자를 상상했다. 그리고 내 아내가 그런 여자이기를 바랐다. 매일은 아니라도, 아주 가끔은 그래주길 바랐다.


여차저차 결혼을 했고, 살면서 무뚝뚝한 내 아내는 여전히 적응이 잘 안 된다. 가끔 아내는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린다.


우린 대화가 너무 없잖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억울하다. 늘 먼저 말을 걸고, 쫑알거리는 쪽은 난데, 그 책임을 나에게 돌리다니! 화가 치밀어오를 때도 가끔 있다. 하하.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아내 역시 침묵의 책임을 나에게 돌릴 수 있다. 나는 노력했지만 그 노력을 노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각은 자유니까.



DALL·E 2024-01-22 08.03.30 - A realistic painting of a happy and joyful couple. The couple is smiling and looking at each other with affection. They are casually dressed, suggesti.png



이제 나는 마흔 후반에 들어섰고, 내 아내는 마흔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몸도 마음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으니, 우리 둘 모두 이전처럼 젊지는 않다. 힘도 떨어지고, 활력도 떨어졌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아내와 내 곁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나는 매일 역기를 들고, 아내는 러닝을 하거나 수영을 한다. 둘 모두 비교적 젊음과 활력을 유지하려 노력 중인 것이다. 샤워를 하고 속옷만 입고 화장을 하는 아내를 보면, 가끔 심쿵할 때가 있다. 여자구나! 나는 그런 느낌이 좋다. 건강을 유지하려 운동을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운동만으로 여러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해지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하루를 활기 있기 시작할 수도 있다.


부부는 오랜 여정을 함께 가야 하는 관계다. 평생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기로 약속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뿐 아니라 몸도 그 약속의 대열에 함께 서야 한다. 나는 아내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이리라.


우린 살면서, 이성과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종종 잊는다. 그러나 이성과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충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 모두 존재의 기쁨을 위해 이성이 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어쩌면 부부 간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내 아내, 여전히 아름답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을 꾸밀 줄 안다. 좋은 일이다.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결혼식 날 서로에게 한 약속은 마지막까지 진행형이다. 약속은 십자가이고, 의무다. 즐거운 일만은 아니리라. 그러나 책임을 다 하면, 거기 기쁨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진리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나 일에서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이다. 우린 무언가 했을 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지닌 가장 큰 비밀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성이 되자. 나의 동반자에게! 그러려면 무엇이든 하라. 움직이라. 운동을 하라. 자신을 꾸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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