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애에게는 같은 반에 천적이 있었다. 설명하자면, 복잡하나 상상하기 어렵지는 않으리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천적이, 아니면 천적 비슷한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왠지 나와 잘 안 맞거나, 성가시거나, 까다롭거나, 나를 적대시하는 인간 말이다. 이런 사람, 참 피곤하다.
무시해서 떨쳐낼 수만 있다면야 좋겠으나, 천적은 그리 쉽게 물리칠 수가 없다. 그래서 천적일 것이다. 늘 내 주변에 맴돌면서 나를 곤란하게 하거나 무시하거나 어려움에 빠드리거나 당혹감을 느끼게 한다.
내 딸애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딸애는 학교에 다녀오면 으레 그 아이 이야기를 내게 했다.
진짜 싫어!
그런 말을 들으면, 나 역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 녀석 한번 학교에 찾아가서 혼내줄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묘하게 내 딸애를 힘들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것이 속상했다. 그런데, 찾아간들 무슨 해결책이 있겠는가. 이미 중학생인데 그것은 내 딸도 원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늘 마음으로 삭이고 또 삭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딸애가 말한다.
아빠, 그 애 캐나다 간대.
캐나다?
어.
어떻게?
몰라. 자기 캐나다 가게 됐다면서 자랑하던데?
오, 그것 아주 잘됐구나.
이 일은 딸애에게도 나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궁금했다. 이 아이가 어떻게 캐나다를 가게 됐을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에 내 딸애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 딸애의 아버지는 교회 목사인데 이 아이는 자신의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아빠는 딸애에게 심한 말로 혼내거나 심지어 때리는 경우도 있고, 어느 날엔가는 아빠와의 관계 때문에 가출까지 했다.
고속도로에 그냥 내려주고 아빠가 가 버린 적도 있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물었다.
그러게.
그래서 어떻게 집에 왔대?
경찰이 집에 데려다 줬다는데?
이런. 믿을 수 없네. 그 아이는 괜찮다니?
응. 그걸 아주 자랑처럼 이야기하던데?
대충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내 딸애 천적의 캐나다행의 비밀을 알아냈다. 이유인즉슨 목사인 아빠가 캐나다로 목회 사역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아, 그래서 가게 된 거였구나. 그래, 캐나다 이민은 그리 쉽지 않은데. 종교적인 이유로 가게 된 거였어.
아무튼, 천적의 캐나다행 이후 내 딸애는 몇 주 간 나를 졸라댔다.
아빠, 우리도 캐나다 가자.
어떻게 가니, 엄마도 아빠도 다 직업이 여기 있는 걸.
그만두고 가면 되잖아.
내 아이는 마치 다섯 살 어린애처럼 나를 졸랐다. 그 천적 녀석이 캐나다 삶을 인스타그램으로 올리면서 자랑한 모양이었다. 그걸 보고 내 딸애는 부러워했다. 그리고 나를 졸랐다. 막무가내로. 나는 몇 주 간 딸애에게 시달렸고, 간신히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딸애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천적으로부터 벗어났고, 더 이상 캐나다의 캐 자도 꺼내지 않는다. 얼마전에 딸애는 친구들을 불렀는데 무려 7명이나 집에 데려왔다. 나, 깜놀했다. 중1짜리 여자애들 8명이 거실을 점령했다고 상상해 보라.
내 딸애, 잘 크고 있다. 그 점이 감사하다. 앞으로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천적을 만나게 될까. 그러나 딸은 잘 이겨낼 것이다. 자아가 성장하고 커지면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될 테니. 걱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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