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은 Mar 22. 2024

어느날 문득 칼로 얼굴을 그은 내 아이

현대사회, 현대성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어른들, 부모들은 알 필요가 있다.

그저 먹을 것을 해 주고, 옷을 사 입히고, 잠을 재우고, 학교를 보내고 학원을 보내는 것으로 역할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본다. 높은 산에 오르면 낮은 곳에 있을 때 볼 수 없는 전체를 볼 수 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부모 역할, 제대로 된 어른 역할을 하려면 알아야 한다. 많이 알아야 한다. 높이 올라가야 한다.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시대 대한민국 교육 현장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관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교육하기 좋은 곳이에요.


아이들이 행복한 곳이에요.


미래가 밝군요.


한국 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을 먼저 말해두어야겠다. 

스스로 듣지 않으려 할 뿐, 깊은 관심을 두려 하지 않을 뿐, 모를 뿐 현실은 그러하다. 느낌으로, 감으로, 경험으로 어렴풋이 아는 이들은 알리라.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처한 성장 환경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반인간적이며, 어두운 곳인지를!


여러 차례 말했지만, 우리 교육은 살인적 교육이다. 

학교와 학원 교육을 포함해 주입식 교육을 하루 10시간 이상 받아야 하는 나라는 없다. 각종 숙제, 개별 학습 등을 포함한다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니야, 이건 교육이야, 이렇게 믿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떤 교육 전문가도 이러한 질식 교육을 바람직한 교육 형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러 모로 이는 아이들의 현재를 어둡게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1. 현재의 폭력


우선 아이들에게 질식 교육, 주입식 교육 폭탄을 퍼붓다 보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하다. 

행복과 낭만, 동심이 없다. 이들은 세상을 경쟁 프레임으로 바라보도록 강요받는다. 친구는 내가 도움을 받고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 이겨야 할 대상으로 정의된다. 성적과 학습량에 대한 과도한 압박은 아이들이 숨을 쉴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 권리, 자유로울 권리, 고독할 권리, 행복의 권리를 박탈당한다. 아이들에겐 쉼이 없다.


학교 공간, 학원 공간, 가정 공간의 본래 의미가 사라진다. 

한 인간이 성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된다. 가족간의 친밀성, 신뢰, 사랑, 학교에서의 관계성, 타인과의 연대 같은 중요한 요소가 함양될 수 없다.


이 결과는 폭력이다. 

24시간 좁은 닭장에 가둬진 병아리와 같이 우리 아이들 마음이 병들고 있다. 그들은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고 폭력적으로 변한다. 아무런 저항 없이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가정과 학원, 사회의 학대가 가져온 반작용이다. 어른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친구를 돕는 마음은 찾아보기 힘들다. 


즉, 우리 아이들은 폭력의 공간 속에 아무런 방비 없이 노출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흉기다. 어른들이 가져온 참혹한 결과다.


2. 미래.


이러한 아이들이 자라서 어느날 갑자기 훌륭한 인간이 되는 걸까?

그러한 기적이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경험과 교육, 훈련을 통해 습득하고 함양해야 할 요소가 결여된 채로 성장한 아이들은 그저 문제풀이 하나에만 기계적으로 반응할 줄 아는 생명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거죽을 쓴 문제풀이 기계를 양산하는 시스템, 그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이들은 문제풀이 성과에 따라 A등급, B등급... 학교를 간다. 

그리고 다시 문제풀이를 통해 취업을 하는 전쟁에 참전하도록 길들여진다. 좋은 대학에 간 아이들은 근거 없이 자기우월성에 빠진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근거 없이 자존감을 잃는다. 이는 대개의 경우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감정이다. 아이들은 역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만한 연료가 없다. 역경과 실패, 사회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연료한 자존감, 믿음, 그리고 추억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 세 가지가 모두 결핍된 채로 자라난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의 미래 역시 어두운 것이다. 

내가 어려우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내 꿈을 가지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서 사회를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부터 한다.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암울하게 판단한다. 만인이 적으로 인식되기에 인생이란 전투를 두려워한다. 결혼도,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모든 것을 대결 구도로 인식하도록 교육받았기에 성 경쟁, 세대 경쟁, 지역 경쟁, 소득 경쟁에 전투적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무턱댁고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또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위험하나,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단점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한국은 지옥이다. 이것이 객관적 지표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과학적 판단이다. 우리 환경을 낙관적으로 보기엔, 우리보다 더 나은 교육 환경, 성장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들이 너무 많다.


내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겪는 일에 대해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음, 폭력적 환경을 제라가 점점 경험하고 있군. 나, 이렇게 진단한다.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문득 식칼을 들고 자기 볼을 그은 아이의 행동은 내가 볼 땐 전혀 특이한 반응이 아니다. 만인이 만인에게 흉기를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아이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아이 역시 폭력의 피해자다. 이것이 내 아이에게 닥친 문제를 풀어나갈 때 내가 가지는 기본 전제다. 이 전제 위에서 나는 현명하게 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아빠로서 내 책임이다.








*구독을 부탁드립니다.

 

이전 07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부녀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