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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Oct 12. 2023

Chapter4. 잡다한 이야기

공감과 다정

공감은 지능이고, 다정은 체력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수많은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특유의 공감 능력과 다정함으로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유독 다정에 연약하기도 하지만 공감과 다정을 겸비한 사람들은 대개 높은 지능과 단단한 지구력을 가진, 그러니까 완전 진화형 인간에 가깝다는 이론을 굳건히 믿고 있다. (따라서 나의 이론에 의하면 그런 이들에게 끌리는 것은 진화론적 생존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나의 미숙한 인생 데이터를 증거로 이들이 완전 진화형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증명 1_공감은 지능>

 한 프로파일러는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거짓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미루어보아 인간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어떤 순간에는 '가짜 공감'을 뱉거나 '공감 불능'이 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공감의 부재는 무지에서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어떤 주제의 이야기에도 티키타카가 자연스럽고 감정의 공유를 잘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대화의 달인이라고 불리우는 그 사람들도 당연히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진 못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질의 대화를 이끄는 힘은 어디서 올까. (지극히 주관적인 본인 인생의 데이터를 미루어보아,) 그런 이들은 보통 경청과 역지사지의 달인이더라.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더라도 집중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같은 상황에 내가 놓였다면?'를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다. 혹은 비슷한 경험을 기반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어느 정도 유추할 줄 안다. 물론 이때 화자뿐만 아니라 대화에 참여한 모두에게 섬세하게 역지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나의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지금은 멀어졌지만 꽤 자주 모이던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그중 두 명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따로 찾아와 다른 한 친구(A)와의 대화가 늘 불편해서 모임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자초지종을 물으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두 친구 모두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그로 인한 가족들과의 어려움과 걱정을 종종 함께 이야기했다. 문제는 이후에 이어진 대화에서 A가 본인이 주말에 가족들과 아주 화목하고 즐겁게 지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의도한 일은 아닐지라도 그런 순간마다 본인들도 몰랐던 자격지심이 자꾸 올라와 힘들었다고 했다. 오랜 시간 친구로 보아온 A가 심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했으니 이는 분명 무지에서 나온 문제였다. 본인의 이야기가 불편하게 들릴 것이라는 자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역지사지의 불가, 즉 공감 불능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A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을 갉아먹는 대화 속에 앉아있던 나의 친구들을 나 또한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대화는 주된 화자뿐만 아니라 참여하고 있는 모두의 입장을 섬세하게 고려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이게 미숙한 인간의 노력으로 완벽히 해결가능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무기력하게 관계를 저버리는 일을 줄이기 위해선 부단한 역지사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본인이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증명 2_다정은 체력>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고 상대의 시선에서 보인 나를 카메라에 담는 아주 사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본인의 새해 계획이었다. 감동적이기도 신선하기도 한 여러 대답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엄마의 것이었다.

 "너는, 종종 낯설 만큼 욱할 때가 있어. 그럴 때 빼고는 착하고 다정해서 뭐라고 할 수가 없지만 말이야."

 프로젝트 도중 처음 듣는 부정적 평가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별로인 모습을 들키기 쉽다지만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이에게 유일하게 부정적 평가를 받다니. 왜 나의 소중한 그녀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체력이 방전되어 귀가한 저녁이나, 쉬고 싶었던 순간들에 들어온 그녀의 작은 부탁이나 끝없이 늘어놓는 수다에 세상 무뚝뚝하게 대답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욱했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변명이겠지만, 밖에서 다른 이들에게 체력을 다 소비하고 귀가해서는 정작 가족인 그녀에겐 다정할 기력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니, 다들 고개를 매우 끄덕거렸다. 체력이 바닥나면 하물며 나 자신에게도 다정하지 못한데 어떻게 가족들에게 까지 다정할 수 있겠냐는 말들을 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가장 편한 사람들에게 체력을 나누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대화를 했다.

 이후로 나는 예민해지는 순간이 많아지는 듯하면 운동을 했다. 무작정 걷던, 강도 높은 운동을 하던, 체력에 도움 되는 것들을 조금씩 더 했다. 피곤한 순간에도 소중한 이에게 한 호흡 더 가다듬은 마음과 언어로 대답할 지구력과 체력이 필요했다. 가끔 실패하지만 전보다는 잘 해내고 있는 듯하다.


 과공감 증후군처럼 세상 모든 일을 내 일처럼 공감할 수는 없다. 또 누구에게나 늘 다정할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인해 내 마음을 지킬 힘을 오히려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계속 함께하고 싶거나 함께 해야만 하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다정은 서로에 대한 이해로 이어져 단단한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부터 완전 진화형 인간에 가까워질 수 있는 노력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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