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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4. 잡다한 이야기

의지되는 사람

by 세령

중학생 때 등굣길에 서둘러 길을 건너다가 지나가던 차량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다. 스친 다리가 다 까져서 피가 나고 쓰라린데도 학교에 늦지 않고 가는 게 더 중요했던 중학생은 놀란 차주에게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는 학교로 향했다. 지각을 면한 뒤에야 뒤늦게 보건실을 찾아갔는데 보건 선생님이 나보다 더 놀라시면서 빨리 부모님께 전화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순간에 엄마랑 아빠 중에 누구에게 전화할지를 고민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출근한 아빠보다는 가까운 집에 계신 엄마한테 전화를 할 텐데 나는 순간 전화하면 나보다 더 놀라서 안절부절못할 엄마 표정부터 그려졌다. 그래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선 괜찮으면 됐다는 아빠의 짧은 답변을 듣고 전화를 끊은 것에서 그날의 기억은 끝이 난다.


최근에 엄마가 그 일을 언급하셨다. 그 당시에 뒤늦게 아빠에게 상황을 전해 듣고는 당신이 의지가 안 되는 부모가 라는 생각에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하셨다. 그날을 나만 기억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내가 당시에 했던 생각을 그대로 들킨 것 같은 느낌에 아주 당황스러워서 애써 그런 게 아니었다고 둘러대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틀었다.

그러나 '의지가 되는 사람'이라는 게 역할에 따라서 주어지는 옵션은 아니지 않을까. 부모라고 해서 모두 의지가 되고, 선배라고 해서 모두 의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역할보다는 상대방의 성격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의 엄마는 너무나 유약하여 늘 내가 지켜주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에 여히 의지가 된다기보다 내가 지켜야 하는 사람에 머물러 있다.


나에게 의지되는 사람이란, 솔직한 나를 내보일 수 있는 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다정함 속에 단단함이 있어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거나 나보다 차분하게 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어서 나아갈 방법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살면서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을 알 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나에게 그런 사람은 없지 않나'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누구보다 다정하고 담담히 내 상황을 바라보고, 차분하게 나를 위한 방법을 찾는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꽤나 믿고 있다. 면서 겪은 모든 어려움에서 결국 나를 구한 것은 나였고, 나를 가장 애틋해하는 것도 나였다.

그러나 마주친 어떤 상황에 내가 전에 없이 무너져 내린다면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내 남은 인생의 목표는 나 이외에 그런 사람을 한 명 더 만나는 것으로 하려고 한다. 나만큼 나의 인생을 진지하게 바라봐주는 사람, 나의 문제를 침착하게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을 사람, 내가 의지하는 사람 말이다. 그럼 나도 부단히 노력하여 그 사람의 의지가 될 것이다.

아마 60년 안에는 찾을 수 있지. 와랏 나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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