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알만 드세요
일상의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 아파서 병원을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 약사 선생님이 꼭 이런 말을 하신다.
"졸린 약이 들어있어요. 너무 졸리시면 이 알약을 쪼개서 반 알만 드세요."
하필 또 졸린 약은 효과가 좋아서 어쩔 수 없이 먹으면 식곤증에 약기운까지 퍼져서 업무시간 내내 졸기 일쑤이다. 처방약에는 일부러 졸리게 하는 약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고 하다는데, 만병의 근원이 피로와 스트레스니까 약기운에라도 잠을 자면 피로가 풀려 도움이 될 테니 아주 적합한 처방이긴 하다.
이것처럼 뭐든지 간단히 생각하면 답이 있다. 잠을 못 자 피곤하면 자면 되고, 잘 못 먹어 영양이 부족하다면 잘 먹으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하며 살기엔 우리네 직장인들은 무엇하나 맘대로 하기 어려운 을의 삶이다.
9 to 6 근무를 하는 직장인이라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 걸린다고 쳤을 때 하루 11시간을 직장에 쓴다. 물론 이것도 칼같이 출퇴근 시간을 지켰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이다. 7일 중에 5일, 하루 중에 절반이나 회사에 소모하는 이 삶이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 나는 또 영양제를 잔뜩 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곤이 쌓여서 가끔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 길게 복용한 영양제와 처방약이 간에 무리를 줘서 또 피곤하다. 밀려드는 피곤함에 어쩌다가 졸게 되면 업무가 밀려서 퇴근이 늦어질 테고 그러면 또 피곤하다. 아, 피곤피곤.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인의 피곤의 굴레. 그러나 직장인이 아니라고 해서 피곤하지 않을까. 자영업자도 프리랜서도 모두 각자의 이유로 열심히 살아서 피곤하다. 어쩌면 직장인이 일벌레 중에서 가장 편안한 삶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쓰고, 삼키기 고역인 순간마다 사람은 성장한다지만 도무지 매일 삼켜내다가도 삼켜내기 어려운 순간은 자꾸만 찾아온다. 매일 삼켜내던 일상에 갑자기 환멸이 나서 일수도 있고, 오늘따라 유난히 더 써서 일수도 있다. 인생의 쓴 맛도 힘들면 반 알씩 쪼개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누구든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기요, 너무 쓰면 반 알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