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5
박 과장은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쩌다 술자리에 앉아도 으레 사이다나 콜라를 찾아서 일행들로부터 눈총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심 대리가 극구 말려도 막무가내로 마셔댔다. 따라 주지 않으면 혼자 따라 마셨다. 내가 웬일이냐고 묻자 그는 공장에 내려가 있는 동안 늘어난 게 술뿐이라면서 히죽거렸다.
다 알고 있어, 그쪽에서….
그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뱉자 심 대리가 덧대어 설명해 주었다.
양 대리 아시죠? 그놈이 프락치였어요. 우리 계획을 어떻게 속속들이 알까, 궁금했는데 그놈이 다 일러바친 거더라고요.
그걸 그냥 놔뒀어?
그럼 어떻게 해요? 자신이 살겠다고, 결정하고 건너간 것인데….
그래도 그렇지.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덩치가 커서 목도꾼이라고 불리던 그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심 대리가 따라 주는 대로 연거푸 잔을 비웠다.
공장 생산직 사원들도 이젠 완전히 두 패로 나뉘었어요.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아요. 떳떳하게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다닌다니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함께 결사반대 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세상 참 웃기지 않아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 딱이에요.
심 대리는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이 모두 돈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 사람을 변절시키기도 하고, 돈이 사람을 한데 뭉치게도 한다니까요.
나는 그가 돈, 돈 할 때 문득 영업실적을 초과 달성할 적마다 만면에 웃음을 띠던 공 이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그날 술자리는 박 과장이 마구잡이로 술병을 깨고 테이블을 엎는 바람에 끝이 났다. 개 같은 세상, 개 같은 세상…. 누가 신고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차가 오고 지구대에 실려 가면서도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같은 소리를 계속 반복했다.
개는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쉬는 듯하다가도 다시 짖어댔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또 며칠을 피가 마르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 소리가 터질 적마다 나를 향한 아내의 잔소리와 힐책도 따라 비례했다. 아내는 의사가 주의한 대로 두통과 불면증, 거기에 왝왝거리는 것을 보면 없던 구토 증세까지 나타내고 있었다. 어떡할 거예요, 저 소리! 나는 아내의 고성이 터질 적마다 귀를 막았다. 답답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머리를 짜 보아도 궁리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곳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아내가 들을 리도 만무하지만 나 자신도 그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항복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사이에도 개를 끌고 나온 그와 마주친 적은 딱,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처럼 개를 데리고 내려오는 그와 승강기에서 마주쳤고, 또 한 번은 오전 무렵 공원에서 돌아오는 그를 후문 앞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모르는 척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도망치듯 피했다. 다만, 그때도 시커먼 그 개는 나를 안다는 듯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며 헥헥거렸다.
결국 내가 다시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궁리한 묘안은 동조 세력을 규합하자는 것이었다. 혼자 해결하지 못한다면 여럿이 뭉치면 될 것 아닌가. 그동안 한밤중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를 우리만 들었을 리는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갑자기 힘이 솟았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관리실도 어쩔 수 없이 적극성을 띨 게 틀림없었다. 나는 자리를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왜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웠다. 물론 발품은 팔아야겠지만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은 틀림없었다.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단숨에 비운 내 눈앞에는 어느새 프로레슬러 같은 그가 백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는 그 묘안을 아내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방법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환영의 뜻을 비쳤다. 왜 그런 생각을 이제야 했어요? 아내는 그러나 입주자들이 과연 내 뜻을 잘 따라 줄지 의문이라고 했다. 요즘은 다 그렇잖아요. 저마다 바쁘게 사는데…. 아내의 말은 특별히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기피하는 게 요즘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비록 타의에 의해 백수 신세로 전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단성과 단속하는 힘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이참에 아내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