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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남 Sep 15. 2023

(소설) 개들의 전쟁 / 제5화

제5화

왜 하필이면 우리 집 위층일까.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개 소리가 예고 없이 쳐들어와 집 안을 온통 들었다 놨다 할 적마다 가슴을 쳤다. 며칠 동안 골똘히 세웠던 계획을 모두 내려놓은 날 나는 문득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돌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작은 평수지만 내 집에서 그냥 아내와 함께 열심히 일하며 조용히 사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다니…. 그렇다면 더더욱 잃어버린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 소리를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의 존재감을 위해서도 필연이었다.

찬물에 밥을 말아 오이지를 반찬으로 대충 점심을 마친 나는 마스크로 무장한 채 관리실을 향해 운동화를 꿰어 신었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잃어버린 실마리를 다시 찾아보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았다. 그사이에도 아내는 안방에 들어앉아 딸과 통화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은 관리실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관리소장은 이십여 분이 지난 후에야 이쑤시개를 입에 문 채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그가 권하는 의자에 앉지도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따져 물었다. 

제가 찾아온 게 벌써 몇 번째인 줄 아십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커진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그러나 내가 눈을 치뜨고 물었으나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린 소장은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를 파내고 있을 뿐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소장님 귀에는 밤낮없이 짖어대는, 4동 804호의 개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단지를 온통 들었다 놨다 하는데도요?

나는 그동안 내가 숙지했던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 2항에 명시된 내용, 즉 층간소음이 발생할 시에는 관리 주체에 그 사실을 알리고, 이를 접수한 관리 주체는 피해 끼친 해당 입주자에게 층간소음 발생을 중단하거나 차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들려줬다. 여기에서 관리 주체란 관리실을 말하며, 더구나 피해 끼친 입주자는 관리 주체의 조치 및 권고에 협조해야 한다는 3항을 들어 관리 태만 아니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소장은 입을 금방 열지 않았다. 이미 그와 같은 민원에 타성이 생긴 듯 미적거렸다. 결국 몇 번 더 같은 질문을 거듭한 후에야 이쑤시개를 빼고 입을 연 그는 요즘 반려견 기르는 집이 어디 한두 집이냐고 되물으며, 아파트 관리란 공동생활과 입주자들의 사생활이라는 양 날개를 동시에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덧붙여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르는 반려동물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 뒤 1,200만 마리가 넘는다는 것과 아울러 반려동물 등록제는 물론, 지금 반려동물 헌혈 운동 등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머잖아 반려동물 건강보험제도가 나올 전망이라는 것까지 들어가며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결국 나는 그날도 소장으로부터 직접 찾아가 중단시켜 달라는 요구에 대한 확답을 받아 내지 못했다. 다만 방송만큼은 고려해 보겠다는 언질을 받은 게 고작이었다. 드문드문 창구를 찾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더 이상 소장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 나는 빈손으로 관리실 계단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개 소리를 듣지 않는 날은 언제쯤 다시 올까. 관리실을 벗어나자 문득 어젯밤 딸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 경우,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서로 먼저 중단시켜 달라고 아우성치지 않았겠어요?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보름 넘게 올 듯하면서도 빗방울을 뿌리지 않는 하늘은 그날도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집에 들어선 나는 아내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평소 깔끔하기로 소문난 아내의 품성과는 달리 안방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마도 급히 빠져나간 듯했다. 무슨 일일까. 조금 전까지도 딸과 통화하지 않았는가. 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뒤 가쁜 숨을 내쉬며 들어서는 아내의 모습에서 나는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또 개였다. 내가 관리실에서 소장과 다투고 있는 동안 개가 또 한바탕 짖어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럴까, 아내의 낯빛은 다른 때보다 더 창백했다. 아내는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 어디 갔다 오는지 아세요?

글쎄….

위층이요.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듯 아내는 머리를 꼿꼿이 치켜들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갑게 날아왔다.

당신이 못 하면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의 힐책이 다시 내 머리 위로 속사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집 안에 불한당처럼 함부로 쳐들어와서 심장을 마구 찔러대는데, 당신이 해 줄 거라 믿고 무작정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여긴 당신 회사가 아니라고요. 

 나는 머리를 수그린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린 데가 없었다. 가장으로서 그것 하나 아직 처리하지 못하다니,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집, 참 이상하대요?

아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꾸가 없어요? 개가 그처럼 사납게 짖는데도….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홧김에 올라가긴 했으나 아내 역시 헛수고한 게 틀림없었다. 정말 큰일이야. 아무 대책도 없이 이렇게 질질 끌려가다가는 성마른 내가 먼저 죽고 말 것 같아…. 혼잣말을 내뱉으며 아내는 혀끝을 찼다. 나는 그게 주변머리 없는 나를 탓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개를 싫어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 경자네 집 개가 그렇게 사라진 뒤부터였다. 그 사나운 개가 왜 이따금 내 꿈에 나타나곤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때마다 소스라쳐 깨어나곤 하였다. 어떤 때는 오줌까지 지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 뒤로 길거리에서 큰 개와 마주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슬슬 뒷걸음질을 쳤다. 개를 싫어하는 쪽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 부부는 천생연분이 분명했다. 거기에다 개를 싫어하는 것은 자기 엄마를 쏙 빼닮은 딸도 마찬가지였다. 딸은 날리는 털과 배변 그리고 개들이 풍기는 냄새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것을 종합하면 총체적으로 싫다는 뜻이었다. 그런 까닭에 딸은 일 년에 댓 번 방문하는 처제가 반려견인 ‘구슬’을 안고 오는 날이면 자기 방에 숨어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모라면 죽고 못 사는 사이였지만 처제가 아무리 불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면 아내까지 덩달아 개를 데리고 오려거든 앞으로는 우리 집에 발그림자도 들여놓지 말라고 엄포를 놓곤 했다. 그럼 어떡해, 집에 얘 혼자 있는데, 놔두고 와? 불쌍하잖아. 처제가 울상을 지었으나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딸이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건 열 번도 넘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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