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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남 Sep 14. 2023

(소설) 개들의 전쟁 / 제3화

제3화

3


컹, 컹, 커엉, 커엉, 컹! 

아내와 함께 티브이 앞에 앉아 참외껍질을 벗기던 나는 그날도 그 소리에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을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곧이어 뛰어다니는 육중한 소리가 쿵쾅쿵쾅, 천장을 울렸다. 그러고는 곧이어 요란스러운 소리가 고막을 때리기 시작했다.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짖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한번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 부부는 경기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두 손바닥으로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허락 없이 고막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그 소리는 무방비 상태인 내 심장을 무차별 요격했다. 또 시작되었네, 시작되었어. 아내는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울상을 지으며 서둘러 주방으로 도망쳤다. 나는 반쯤 깠던 참외를 내려놓고 티브이 볼륨을 한껏 높였다. 그렇게 하면 그 불협화음을 조금은 잡을 수 있는 상쇄 효과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티브이에서는 마침 층간소음으로 시달리던 아래층 40대 남자가 위층의 60대 노인을 도끼로 살해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 앵커는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현대인들이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 40대 남자가 어떤 심정이었을까, 충분히 이해되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사실, 나도 그 소리가 예고 없이 우리 집 안으로 파고들 때면 그 40대 남자처럼 당장 도끼를 들고 뛰어 올라가 개와 프로레슬러의 머리통을 박살 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다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마음을 먹었다가도 그날 승강기에서 마주친 송아지만큼 큰 검은 개의 위협적인 눈초리와 혹시라도 놓칠세라 가죽으로 된 목줄을 움켜잡고 있던, 덩치가 내 두 배는 될 것 같은 사내의 근육질 팔뚝이 떠오르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앉곤 했을 뿐이었다.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지…. 그러나 아내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며칠째 허락도 없이 우리 집에 함부로 침범해서 휘젓곤 하는, 불한당 같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왜 대책을 세우지 않느냐는 소리를 스스럼없이 내뱉곤 했다. 나는 아내의 요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혈액 안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져 빈혈 증상을 보이는 아내가 요즘 들어와 두통과 소화불량 증세까지 일으키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그 소리 탓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참하라는 해고 동료들의 전화가 빗발치는 가운데에서도 관리실에 달려가 몇 번 강력하게 민원을 제기도 하였고, 또 아내의 강요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용감하게 위층에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관리실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감감무소식이었고, 위층은 인기척이 없기 일쑤였다. 

관리실은 도대체 뭐 하는 곳이래요?

글쎄 말이야.

나는 아내의 얼굴을 한번 살피고는 시선을 돌렸다. 실직까지 당해 가뜩이나 힘든 판인데 엎친 데 덮친 꼴이었다. 

그것을 아주 근절시킬 방법은 없을까. 두억시니 같은 그와 맞서 이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천천히, 자근자근 계획을 세워 이성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아내의 채근에 밀려 감정을 앞세웠다가는 실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왜 또 가만히 계세요? 몇 번이고, 그칠 때까지, 계속 올라가서 따져야지요?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밀려났지….

알았어.

당신이 올라가기 싫으면 제가 갈까요?

아니야. 내가 다녀올게.

그럼 꾸물대지 말고 냉큼 다녀와요.

아내는 나를 쏘아보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마스크를 챙겨 들고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도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는 줄곧 나를 따라왔다. 

나는 승강기를 버리고 계단을 택했다. 올라가면서 만약 그가 왈칵, 문을 열면 뭐라고 할까, 궁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떤 일이든지 기선제압이란 중요하니까. 좋은 말로 될 것 같았으면 벌써 되었지. 804호 앞에 다다른 나는 숨을 한 차례 몰아쉬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빗발치는 아내의 성화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해서는 그와 한번은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전갈 문신을 팔뚝에 새긴 그가 프로레슬러 같고, 그 송곳니 사이로 혀를 내밀고 있는 그 개가 크고 사납더라도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숨을 몇 차례 길게 내쉰 나는 힘차게 초인종을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컹, 컹, 커엉, 커어엉. 초인종 소리가 나자 출입문 앞까지 달려온 개가 문짝을 앞발로 세차게 긁으며 요란스레 짖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으르렁, 거리는 품이 만약 출입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면 당장 뛰쳐나와 물어뜯을 기세였다. 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어 그쯤은 이미 예상했으나 아주 가까이에서 그 소리를 듣게 되자 나는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개 소리만 요란하게 들릴 뿐,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조심스럽게 몇 번 더 눌러 보았으나 반응은 지난번과 똑같았다. 개만 남겨 놓고 모두 어딘가로 외출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개가 제왕처럼 큰 소리로 단지를 들쑤셔 놓을 적에도 그랬다는 것인가. 나는 갑자기 그렇듯 시끄럽게 짖는 개를 그냥 방치한 채 외출한 그들의 무책임에 분노가 치밀었다. 백 차장이 회삿돈을 빼돌리는 것도 모르고 미팅 때마다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영업부만 닦달하던 공 이사처럼…. 나는 지난번 올라왔을 때 딱, 한 번 문도 열지 않고 인터폰으로 알았어요, 조심 시킬게요, 하고 단답형으로 대꾸하던 여자의 음성이 떠오르자 정말 이대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반드시 근절시킬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딸과 통화를 하고 있던 아내는 내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서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래요?

없어, 아무도.

비었단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개만 있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낸 나는 그것을 그대로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나도 모르게 정수리에 땀이 돋았고, 목이 말랐다. 아내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관리실에 또 가서 항의하세요. 우는 아이 젖 먼저 준다고, 그래야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면 정말이지, 제가 먼저 죽겠다니까요. 당신 아시잖아요? 내 몸이 지금 어떤 상태라는걸….

나를 위층으로 몰아내던 조금 전에 비하면 아내의 눈초리가 좀 풀어진 건 확실했다. 하지만 아주 누그러진 것은 아니어서 그때까지도 말투에는 여전히 가시가 돋쳐 있었다. 아내는 다시 딸과 통화를 계속했다.

…둔하잖니, 본래. 그러니까 회사가 망할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졸지에 당한 거 아니겠어? 그건 받았지, 그럼 그거까지 주지 않았다간 큰일 나지.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 앞으로가 문제야. 아직 나이가 있는데 집구석에서 놀고먹을 수는 없잖아? 쌓아 놓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라고는 하는데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난 기대 안 해. 그럼, 이번까지 벌써 몇 번째냐. 지겹지. …그래, 보면 모르냐.

물병을 식탁에 내려놓은 나는 딸과 통화하는 아내의 말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주방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경력사원으로 ‘동영’에 입사하기 전에도 같은 업종의 ‘승국주식회사’에 있었고, 또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는 왕십리의 건자재 대리점에도 잠시 몸을 담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젠 끝이라는 자괴감이 자꾸만 나를 무겁게 눌러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흩뿌릴 듯 잔뜩 흐려 있었다. 어쩌면 예보대로 늦은 장마가 정말 시작될 것 같기도 했다. 

심 대리가 문자를 보낸 것은 일주일 만이었다. 그는 잠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점심을 먹은 뒤에 동료들과 자주 찾던 회사 근처 E 카페를 약속 장소로 정했다. 시간에 맞춰 카페 출입문을 밀고 들어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금방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가 아이스아메리카노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아무래도 회사가 소문대로 대풍제약으로 넘어갈 것 같다는,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나를 더욱 움츠리게 하는 것은 생산직은 그나마 인수할 회사가 부분 선별할 예정이라지만 관리직과 영업직은 모두 새 사람, 즉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울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린? 

뭐가 어떻게 돼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거지요.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투쟁 현장도 사분오열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앞장섰던 생산직 사원들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기 시작했으며, 관리직도 어느새 그쪽에 빌붙기 위해 이탈하는 사원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되었다. 먹고산다는 게 뭔지, 심 대리가 혀끝을 찼다. 

나도 모르게 이 사이로 앓는 소리를 내던 나는 박 과장의 근황을 물었다.

그는, 그래도 박 과장은 초지일관 농성 현장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허 과장님도 무임승차할 생각 마시고,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세요. 

무임승차라니?

국으로 댁에서 관망만 하고 계시니까 그런 볼멘소리들이 나오는 거지요.

내가 그랬나?

그런 셈이잖아요. 지금 하고 계시는 게….

카페 근처 술집에서 소주 몇 잔을 걸친 그는 다음 날 다시 내려간다고 하면서 나를 쏘아보았다. 무임승차, 무임승차….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에게 지금 처한 내 가정의 다급한 현실, 즉 불한당 같은 개 소리를 설명한다는 게 왠지 구차스럽고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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