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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남 Sep 14. 2023

(소설) 개들의 전쟁 / 제4화

제4화

4


문제의 핵심은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개였다. 개만 없다면 프로레슬러가 살든, 아이 다섯 명을 둔 가족이 살든 우리가 애면글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노부부가 살던 때처럼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아파트란 토끼장처럼 층마다 개인 생활이 보장되어야 하는 공간이니까. 따라서 그 개만 없어진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 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이번엔 개를 어떻게 없앨까, 혼자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팔뚝에 전갈 문신을 새긴 야차 같은 그가 개를 치워 달란다고 순순히 들어줄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아파트에 데리고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이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죽여야 한다는 것, 죽여서 그 소리를 다시는 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가 그와 같은 매몰찬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몰아낼 수 있을까를 놓고 고심했다. 그래서 찾아낸 게 법이었다. 그러나 동물보호법 제1조에 명시된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의 방지 등,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 관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동물의 생명 보호, 안전보장 및 복지증진을 꾀하고, 건전하고 책임 있는 사육문화를 조성하여,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기르고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하고자 제정한다는, 조문을 읽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맹견’의 정의를 도사견, 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개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한 개를 일컫는다는, 애매모호한 조항을 읽었을 때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종자도 확실치 않은 위층의 개는 어디에 속한단 말인가. 그것은 사람의 권익보다 개의 권익을 우선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며칠 만에 내가 찾아낸 결론이란 결국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결심하자 왜 지금까지 몇 날을 혼자 속을 끓였는지 스스로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는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틀림없지만 잘못하면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터에 지청구나 들을 수 있고, 또 딸의 귀에까지 금방 들어갈 게 뻔했으며, 무엇보다 그런 일일수록 마무리할 때까지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개가 짖을 때마다 머리를 싸쥐고 주방으로 뛰어가 숨고(거기가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나에게 눈총을 주며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닦달하고, 틈만 나면 남편 따라 여수에 내려가 있는 딸에게 응원을 청하는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나는 아내가 핸드폰에 대고 내 흉을 쏟아 낼 적에도 짐짓 딴청을 부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언제까지요? 여름이에요. 이 여름에 창문도 열지 못하고 살게 생겼는데도요?

글쎄, 조금 더 기다려 보자니까. 

나는 아내를 향해 활짝, 웃기까지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해치우겠다고 세운 그 계획을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었다. 현실은 계획과 달랐다.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너무 많았다. 내가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총기를 사용하여 직접 죽이는 방법이 있었고, 둘째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 셋째는 목을 매다는 방법, 그리고 넷째는 독극물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첫째는 구매 과정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신상이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보관 또한 내 임의로 되는 게 아니었다. 총은 늘 경찰서에 비치하고, 사용할 때도 목적과 신분 확인이 필요했으며, 사용 후에도 반드시 기일 안에 반납해야 하는 제약이 따랐다. 그렇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겠다는 내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맞서야 하는 난점이 있었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데 그 크고 사나운 개와 대결하다니…. 그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내가 방점을 찍은 것은 독극물을 사용하는 네 번째 방법이었다. 청산가리. 그랬다. 그것 이상 효과가 만점인 것은 없었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혼자 쾌재를 불렀다. 그놈이 좋아할 튀김 통닭 배 속에 그것을 깊숙이 찔러 넣고 슬그머니 던져 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너끈히 해치울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렇게 되면 그 보기 싫은 놈과 맞상대할 필요도 없고, 프로레슬러와도 낯 붉힐 이유가 없었다. 시치미만 떼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이웃한 나라에서는 들개들에게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적이 있었고, 파키스탄에서는 유기견을 없애기 위해 라두라는 음식물에 이같이 독극물을 넣어 자전거에 걸어놓는 방법을 통해 효과를 보았다는 보고도 있었다. 구매도 독극물치고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으로 구매하면 신상이 노출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경우, 어떻게 개 주둥이 앞에 치킨을 던져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개는 혼자 다니지 않았다. 더구나 밖으로 나올 때는 반드시 촘촘한 그물 마개로 입을 가렸고, 또 그가 늘 가죽으로 된 목줄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기회를 엿보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또 설혹 어쩌다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처음 보는 내가 뜬금없이 던져 주는 통닭을 그 개가 덥석, 받아먹을지도 의문이었다. 자칫 잘못하여 그 안의 독극물이 발각되는 날이면 오히려 덜미를 잡혀 망신살은 물론이고, 까딱하면 동물보호법 제46조에 명시된 대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손등으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습기를 머금은 미지근한 바람이 반쯤 열어 놓은 주방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내 얼굴을 연신 핥고 있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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