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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남 Sep 13. 2023

(소설) 개들의 전쟁 / 제2화

제2화


개 소리 때문에 살 수 없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던 아내는 실직 소식을 듣자 예상대로 눈을 크게 뜨고 팔짝팔짝, 뛰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다고요? 아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똑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나는 그때마다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채 어눌하게 또 똑같은 대꾸를 반복했다. 회사가 문을 닫았어. 그래서 지금 온통 난리야. 혀끝을 차며 나를 노려보던 아내는 날마다 출근하면서 그동안 그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느냐면서 나를 정말 바보처럼 취급했다. 

청맹과니 아니에요, 당신?

아내는 서슴없이 쏘아붙였다. 그래도 나는 예상과 달리 아내가 울고불고하지 않는 것만을 천만다행이라고 여겼다. 

조금만 기다려 봐. 결사 투쟁한다고, 모두 공장으로 몰려갔으니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몰라. 

그걸 나보고 기대하라고요? 누굴 어린애로 알아요?

심 대리가 연락한다고 했어.

나를 향해 계속 쏘아대던 아내의 비아냥은 결국 위층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개 소리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다. 잘됐네. 아주 잘됐어. 이젠 저 집 개나 좀 치워요. 저 소리 때문에 내가 아주 병이 도지게 생겼어요.

아내의 눈길을 피해 선 채 소리가 들리는 위를 올려보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거실 천장에 바른 벽지가 무지가 아니라 은색의 장미 무늬가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과 막대형광등 주변으로 까만 파리똥이 모래알처럼 많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회사에서 해고되기 열흘 전 저녁이었다. 그러니까 주차장을 점거한 ‘행복한’ 포장이사 탑차가 오전 내내 머물며 사다리로 짐을 나르고 난 다음 날 오후 시간대였다. 나는 그 짐들이 우리 집 바로 위층인 804호로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이유는 그곳에 살던 노부부가 아들네 집으로 들어간다고 이사한 후 며칠째 뭘 뜯어고치는지 오후 늦게까지 뚝딱거리는 망치 소리와 이가 갈릴 듯한 그라인더, 굴착기 소리로 귀가 아팠는데 이젠 그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누가 입주하는데 요란을 떨까. 그 소리를 들으면서 사실 나는 이번에도 노부부처럼 부디 좋은 사람들이 입주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아내의 기대는 나보다 더 컸다. 그것은 악성빈혈 증세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가 진료와 처방전을 받아야 하는 아내가 오히려 며칠만 참으면 될 텐데 뭘 그래요, 하며 나를 다독거린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 보상을 새로 입주하는 사람들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에 쫓겨 승강기에 오른 나는 먼저 탑승해 있던 804호 입주자와 마주치는 순간,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직감했다. 입을 가리기는 했으나 쉬지 않고 가쁜 숨을 내뿜는 검은 개의 목줄을 움켜잡은 그를 본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한마디로 그는 프로레슬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것도 링 위에서 늘 악역을 천연덕스럽게 해 대는…. 어림잡아도 일 미터 팔십 센티는 너끈히 넘을 것 같은 큰 키에 백 킬로그램도 더 나갈 것 같은 그는 내가 주춤거리며 승강기에 오르자 고개를 까딱, 했다. 아래층에 사세요? 저는 804호에 어제 이사 온 사람입니다. 마스크를 쓴 탓일까, 약간 쉰 듯한 목청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를 올려다보던 나는 대꾸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우락부락한 인상에 지레 겁을 먹은 탓도 있지만, ‘동물의 왕국’에서 본 적 있는 늑대 같은 개가 헥헥거리며 내 주위를 계속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입고 있는 폴로 빨간 티셔츠 바깥으로 드러난 팔뚝에 퍼렇게 새겨진 전갈 문양의 문신이 윤기 흐르는 개의 검은 털과 어우러져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갇힌 나는 도망갈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사람을 겉모양으로 가름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지만 그날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 그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시끄러움에 대한 항의는커녕 눈살조차 찌푸릴 수가 없었다. 한 라인에서 사용하는 승강기가 한 대인 까닭에 싫어도 앞으로는 오르내리며 자주 마주칠 텐데, 걱정이었다. 더구나 그 주인만큼이나 우람한 개가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우리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이웃 사이에 일상 나눌 수 있는 인사말, 일테면 환영한다든가, 어디 가느냐, 자주 보자는 등과 같은 겉수작도 건네지 못한 채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도망치듯 잰걸음을 놓았다.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나와 다른 모습이었다. 개를 앞세우고 내린 그는 조금 전까지 같은 승강기에 탔던 나의 존재 따위는 벌써 잊은 듯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공원 쪽을 향해 여유롭게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내는 내가 염려하던 대로였다. 이야기를 듣고 난 아내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렇게 큰 개를 아파트에서 기를 수 있는 거예요? 그거 법에 걸리지 않아요?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겠더라니까. 덩치가 만만해야 말이지.

개요? 사람이요?

둘 다.

나는 혀끝을 차는 아내를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신트림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친구들과 나눈 저녁 식사가 잘못된 듯했다. 주위를 맴돌던 그 개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했는데도…. 

그럼 이제부터가 더 큰 문제 아녜요?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좋은 이웃은 아니더라도 나쁜 이웃이 입주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는데, 아내의 말대로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개가 무섭게 생겼어요?

그럼, 시커먼 게 꼭 송아지만 해.

두 팔을 한껏 벌려 아내에게 개의 크기를 부풀려 나타내던 나는 문득 어린 시절 경자네 집 대문에 붙었던 ‘개 조심’이라고 쓴 문구가 떠올랐다. 그때 그 개는 사납기로 동네에서 유명했다. 그런 까닭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동네 사람들은 발뒤꿈치를 치켜올리고 걷기 일쑤였다. 나보다 한 살 어렸던 문철이가 대문 앞에서 멋모르고 얼찐거리다가 물리는 걸 목격한 뒤로 아이들은 누구나 겁을 먹고 있었다. 더구나 한번 짖기 시작하면 쉽사리 그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거쿨진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왁살스러운지 동네가 다 떠나갈 정도여서 사람들은 귀를 막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개를 마음대로 다루는 경자까지도 무서워했다. 그녀의 입에서 까불면 메리 풀어놓는다는, 한마디가 떨어지면 찧고 까불다가도 모두 도망치기 일쑤였다. 그 개도 주둥이와 발목 쪽을 빼고는 모두 새카맸다. 그러나 얼마 뒤 그 개는 동네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소문으로는 경자 아버지가 보신한다고 개천가로 끌고 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우려한 대로 그날부터 우리는 귀를 막고 살아야 했다. 간헐적으로 터지곤 하는 굉음 같은 소리는 한번 시작되면 끝날 줄을 몰랐다. 한두 번 짖다가 말겠지, 했으나 아니었다. 거기에 어찌나 크고 우렁찬지 한번 짖기 시작하면 4동 모두 합쳐 560세대가 사는 작은 아파트 단지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였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그 소리가 한밤중에도 예고 없이 터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한여름이지만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 수가 없었다. 그래도 프로레슬러 같은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아래위층을 오르내리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양해를 구할 법도 한데,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조용하고 착한 단지였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고, 건축한 지 20년이 다 되어 조금 낡기는 하였으나 고층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와는 달리 12층으로 비교적 나지막하고 또 모두 똑같은 28평 면적에 사는 까닭에 입주자들의 살림살이 또한 엇비슷한 편이었다. 자가라고 해서 유난을 떠는 세대도 없었고, 전세나 월세라고 해서 기를 펴지 못하는 세대도 없었다. 거기에 산자락을 끼고 도는 산책로와 공원이 이웃에 있고, 버스 정류장과 대형할인매장까지 가까이 있어 우리는 10년 넘게 살아도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새로 조성된 이웃의 다른 단지보다 유독 노인네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흠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더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전철역이 떨어져 있어 출근길이 불편하고, 인근의 20층짜리 신축 아파트에 비해 가격대가 낮다는 게 조금 불만이긴 하지만 나는 아내의 말대로 오십이 넘은 나이에 이만한 아파트나마 건사하고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더욱이 노부부처럼 입주한 지 꽤 된 이웃들과 서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것도 애착을 갖게 하는 점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우리 집 아래층인 604호 미란이 할아버지와 303호의 최 사장, 또 건너편 3동 808호에 사는 김 선생과 돈독한 사이가 된 것은 무형의 힘이 되었다. 

적어도 그가 입주하기 전까지는 그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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