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곧장 그 작업에 착수했다. 내가 처음 찾아간 사람은 3동 808호의 김 선생이었다. 그는 청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사람인데 나보다 나이는 열두 살이 많았지만 몇 년 전 공원에서 음료수를 나눠 마신 게 인연이 되어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인품이 점잖고 후덕하다는 소문이 나 있는 만큼 잘하면 그를 통해 또 다른 동조 세력을 규합할 수도 있겠다는 계산이 나로서는 내심 깔려 있었다.
그는 마침 집에 있었다. 내가 찾아가자 갈색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그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렇게 맘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거냐고, 떨떠름한 얼굴로 한마디 던지고는 나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구조는 우리 집과 같았으나 나는 늘 그의 집에 오면 이상스럽게 도서관에 온 것처럼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그날도 틀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거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서들 때문일 터이었다. 내가 두리번거리자 그가 혼자 돌아가던 선풍기 머리를 내 앞으로 돌려 주며 아내가 출타 중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나는 그가 내미는 음료수 컵을 받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얼굴이었다.
개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지는 않느냐고요?
찬 음료는 레몬이 첨가된 듯 약간 신맛이 났다.
개 소리? 들었네만, 근데 왜?
그는 여전히 뜬금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런 일일수록 뜸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나는 그동안 그 소리에 대해 그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평일 오전 시간대인데 그런 일 때문에 회사까지 나가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궁금한 듯 반문했다. 나는 그 질문엔 어물어물 대꾸하고 다시 물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을 잘 잤느냐고요?
거실 벽에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언제 찍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가족 다섯이 두 줄로 앉고 서서 웃고 있는 커다란 액자 속의 그는 지금보다 훨씬 젊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불편해서 찾아온 모양이구먼.
맞아요. 어찌나 요란스레 짖어대는지 우리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나는 그의 얼굴을 살피며 찾아온 목적에 대해 자초지종 설명을 풀었다.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말을 마친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음료수 컵을 다시 들었다. 차고 신 음료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가 입을 연 것은 내가 컵을 절반쯤 비웠을 때였다.
하긴, 바로 아래층이니까 그럴 만도 하겠군. 더구나 자네 내자는 더 힘들겠구먼.
그렇지요. 이거야 무슨 대책을 세워서 단지에서 쫓아내든지, 아니면 아예 짖지를 못하게 만들든지 해야지, 이대로는 정말 성한 사람도 병나게 생겼다니까요.
나는 덧붙여 아내가 그것으로 인해서 벌써 두통과 구토 증세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나는 비로소 그가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기대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직감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이야기인데, 나는 그동안 내가 생각해 낸 묘안을 구체적으로 꺼냈다. 그러나 개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뭉치는 방법밖에 없다는 나의 제안에 대한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자네, 이런 이야기 들어보았나?
무슨….
프랑스에서는 내년부터 아예 강아지를 팔고 사는 것을 금지시킨다는 거야. 우리가 인권을 중시하듯 그들의 권리도 중시해 줘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 옛날엔 애완동물이라고 했지? 이제 그런 말을 하다가는 전근대적 사람으로 취급받아. 반려라고 해야지. 자네, 반려가 무슨 뜻인 줄은 알고 있지?
나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유도 없이 밭은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가 느리고 낮은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 혹시 절에 가 봤나? 나는 등산을 자주 가니까 절간을 지나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놀라곤 한다네. 왜 그런 줄 아는가? 개에 대한 제사를 엄숙하고 정성스럽게 지내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거든. …자네, 요 앞 이마트 가 봤지? 거기에서 뭘 봤는가? 몇 달 전까지 진열되어 있던 어린이 장난감 자리에 반려동물 코너가 신설되지 않았든가? 그걸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가?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건너다보았다. 갑자기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비록 에둘러 말하고는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그는 그런 사유를 들고 온 나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이젠 그런 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한다? 참는 게 상책이야. 하긴, 소음진동관리법이란 게 있긴 하지. 층간소음 방지법이라는 것도 있고…. 그러나 모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
그렇다면 형님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지금까지 참았단 말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게 말꼬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셈이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만사가 다 마음먹기라는 말…. 그래서 그런지 날마다 들으니까 그냥저냥 참을 만도 하더라구.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내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구태여 내 편이 되어 달라고, 애걸복걸할 필요는 없었다.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의 자유의사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가 방관자처럼 나 몰라라 한다고 그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방법이 유일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그 집을 나왔다.
(다음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