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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남 Sep 19. 2023

(소설) 개들의 전쟁 / 제9화

제9화

6


불이 꺼진 공장은 마치 공룡이 머물다가 떠나간 동굴 같았다. 출입문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목격한 순간,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붉은 글자로 크게 쓰여 있는 ‘복직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현수막과 벽보는 비단 거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띄는 곳곳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과 벽보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농성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천막엔 겨우 몇 명밖에 없어 오히려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도 생산직 사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심 대리를 비롯한 관리직 사원 몇 명뿐이었다. 무임승차할 생각 말라는 심 대리의 경고성 발언이 밤마다 살아나 송곳처럼 가슴을 찔러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 현장을 찾아왔으나 솔직히 나는 몇 명 되지 않는 그들의 몰골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 대리는 내 얼굴을 보자 원군을 만난 듯 반겼다. 

잘 오셨어요. 진작 그렇게 하셨어야죠.

수고들 하네. 근데, 박 과장은 어디 갔어?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심 대리는 갑자기 시큰둥한 어조로 밑도 끝도 없이 갔다고, 했다.

어딜 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는 어디겠어요. 양 대리 따라갔으니까 저쪽이겠지요.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 할 텐데, 내 속의 말들이 순간 모두 흩어져버렸다. 그래도 심 대리는 기가 꺾인 얼굴이 아니었다. 대풍에서 곧 협상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거라고 장담하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박 과장이 왜 돌아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했다. 며칠 전에도 개 같은 세상, 운운하면서 같이 소주를 마셨고, 테이블을 엎었고, 병을 깼고,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차에 실려 지구대에 가면서도 목소리를 굽히지 않던 사람 아닌가. 따지고 보면, 한때 경쟁 상대였지만 박 과장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지난 시간 숫자에 구속받으며 살아온 셈이었다. 그걸 부추긴 곳은 ‘동영’이란 회사였고, 공동체라는 이름의 사회였다. 회사는 영업 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만큼 땀을 흘렸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직 결과만을 중요시했다. 과로 뒤에 오는 피곤을 쾌감으로 여기라고 했다. 전월 영업1과는 매출실적을 8억이나 올렸는데 3과는 그 시간에 뭐 했어? 이번 달엔 반드시 9억 목표치를 넘기도록 분발들 해. 두 눈을 모로 뜨고 욱대기던 공 이사의 얼굴이 갑자기 눈앞을 스쳤다. 

나는 핸드폰으로 박 과장을 호출했다. 그러나 신호가 여러 차례 가도 그는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답신이 없었다.

이길 자신 있어?

그럼요. 아니라면 벌써 포기하고 말았지, 이 땡볕에 이 짓 하겠어요?

정말이지? 

나는 결국 박 과장이 왜 그쪽으로 갔는가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동영’이 ‘대풍’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화된 듯했다. 그러나 심 대리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면서 장승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는 그곳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보루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준비해 왔던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건네주면서 다시 물었으나 그의 대답은 여전히 똑같았다. 

회사는 자본주만의 것이 아니잖아요. 엄밀히 따지자면 사회가 키워 준 거니까 사회의 것이기도 하지요. 안 그래요? 

그의 주장은 그렇게 보면 근로자들의 권리도 당당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심각한 위기도 겪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때에는 자산 매각이나 근무 시간 단축, 무급 휴직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지요. 그래도 안 될 때 마지막 수단이 정리해고입니다. 물론 거기에도 경영 사정과 노동자 사정을 고려하여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 또 해고 예정일 오십일 전에는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라고 법이 정해 놨어요. 그런데 어디 그런 적 있었어요? 자기들끼리 골방에서 담배나 빨아대면서 일방적으로 선정하고 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 아닙니까? 이건 분명히 근로자들을 무시한 불법행위입니다. 

나는 그의 정수리 위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현수막을 바라보았다. 복직만이 살길이라고 쓰인 붉은 글자가 자꾸만 가슴을 찔러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내는 공장에서 돌아온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아도 벌써 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 전까지 또 딸과 통화한 듯했다. 이젠 박 과장도 저쪽으로 넘어간 모양이야, 했으나 아내는 한번 머리를 힐끗 돌렸을 뿐 가타부타 토를 달지 않았다. 나는 힘이 빠졌다. 개가 또 짖지 않았는가, 묻고 싶었으나 입을 다문 채 내 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하려던 나의 계획은 수포가 된 셈이었다. 믿고 찾아갔던 그들은 모두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선풍기를 돌려 땀을 식히면서 나는 머리를 짜 보았다. 그러나 안하무인처럼 내 머리 위에서 당당하게 짖어대는 저 개를 못 짖게 해야 한다는 목표는 분명하지만 뚜렷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공장에서 보았던 현수막이 자꾸만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며칠 동안 나는 방 안에 박혀 이웃을 원망했다. 산책길이나 공원 등에서 눈길만 마주쳐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 아닌가. 그런데 이처럼 중차대한 일에 나 몰라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그들 역시 피해자인 셈인데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기 대신 나서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도 될 터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나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주민 전체가 아니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비록 밖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닌 주민들도 꽤 많이 숨어 있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물 위로 끄집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궁리한 끝에 얻어낸 결론은 그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곳곳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공장 현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것은 딸의 조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딸이 그것을 제의한 것은 아니었다. 딸은 처음엔 반려견이 웬만한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고는 성대 수술과 중성 수술 등에 관해서 말을 이었다. 성대 수술 받게 하는 건 어때요? 그럼, 짖지는 않을 텐데…. 그러다가 불쑥 꺼낸 게 불특정 다수인 이웃을 모으는 방법으로는 먼저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프로레슬러라고 해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덤벼들면 꼼짝달싹 못 하고 두 손 들게 되어 있어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프로레슬러와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딸은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들을 동원해서 관리실을 압박하는 방법이 최고라고 일러 주었다. 강남이라면 벌써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그때 내가 떠올린 게 현수막이었다. 공장에서 목격한 뒤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붉은 글자의 현수막. 내 말을 듣자 딸은 바로 그거라고,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아내도 그 제안엔 이의를 달지 않았다. 물론 딸의 조언이라고 전제한 탓도 있었지만 내 설명을 들은 아내는 나보다 한술 더 떴다. 

기왕이면 연판장도 준비하도록 하세요. 

연판장?

이 양반은…. 그래야 나중에 개 주인이 뭐라고 해도 옴짝 못하게 할 수 있지요, 주민 다수가 서명한 증거가 있으니까. 

그렇군.

그러니까 여태까지 당신이 요 모양 요 꼴인 거예요. 

아내의 핀잔이 떨어지자 나는 또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며칠째 물기만 머금고 있는 하늘은 그날도 청회색이었다. 바람도 없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계획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현수막 제작은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의 단잠을 깨우는 개 소리를 추방합시다!’ ‘개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새겨진 현수막을 정문 앞에서부터 뒷문, 그리고 공원 입구와 단지를 잇는 도로 주변에 여섯 개 달아맸다. 물론 현수막 아랫부분에는 내 핸드폰 번호를 검은 글자로 새겨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현수막이 설치된 아래에는 단지 길 건너에 있는 ‘부활’ 재활용센터에서 임시로 빌린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아내의 말대로 서명날인할 수 있는 A4 용지를 볼펜과 함께 여러 장 비치했다. 준비는 물론 내 몫이었다. 주민들의 눈에 잘 띌 수 있는 곳을 미리 선정한 나는 혹시라도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한 끈도 단단히 묶고 홀쳤다. 아내가 도와준 것은 문방구에서 볼펜 몇 자루 사 온 게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아내를 탓하지 않았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렸으나 더운 줄도 몰랐다. 그보다는 이것이 정말 개와의 마지막 싸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다음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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