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부터의 위로.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구나.
늘 한결같이 따뜻할 것만 같은 샌디에이고에도 가을이 온다.
언뜻 보면 야자수며 푸르른 나무들이 언제나 싱그러운 이곳.
사계절이 지독히도 선명한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서인지,
알듯 모를 듯 비슷한 이곳에서도 햇빛의 세기, 바람의 온도, 바람에 실려오는 공기의 빛깔로,
이제는 샌디에이고의 봄과 가을을 용하게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곳에서 한 동안 아팠다. 몸보다는 특히 마음이.
아름다운 것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그저 내 마음속 깊은 상처들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미움이 옅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덮어두는 것만으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으로의 돌아갈 시간이 다가 오자, 잊혔던 그런 마음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을.
일하고 또 일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단한 일상.
오랜 기간 동안의 지독했던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되는 수없이 많은 말들, 사건들..
그리고 보이고 읽히는 (오히려 가장 가까운) 인간들의 이기심, 잔인함, 옹졸함, 비열함, 찌질함...
마치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 듯,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가득차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저 스쳐지나가기를.
나는 이제 더 이상 어찌할 줄 모르고 울기만 하는 어린 소녀도 여린 새댁도 아니다.
겨우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켜 요가를 하고 성당을 찾았다.
머리가 아픈 것도 조금 나아지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길 힘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