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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Nov 13. 2023

샌디에이고의 가을

아름다움으로부터의 위로.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구나.

늘 한결같이 따뜻할 것만 같은 샌디에이고에도 가을이 온다.

언뜻 보면 야자수며 푸르른 나무들이 언제나 싱그러운 이곳.

사계절이 지독히도 선명한 나라에서 평생을 살아서인지,

알듯 모를 듯 비슷한 이곳에서도 햇빛의 세기, 바람의 온도, 바람에 실려오는 공기의 빛깔로,

이제는 샌디에이고의 봄과 가을을 용하게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 집 앞 동네. 푸른 빛이 참으로 순하고, 알게 모르게 든 단풍과 순한 하늘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이곳에서 한 동안 아팠다. 몸보다는 특히 마음이.

아름다운 것을 하염없이 보고 있노라면 그저 내 마음속 깊은 상처들이 사라지는 줄 알았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미움이 옅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덮어두는 것만으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으로의 돌아갈 시간이 다가 오자, 잊혔던 그런 마음이 새록새록 살아나는 것을.


일하고 또 일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고단한 일상.

오랜 기간 동안의 지독했던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되는 수없이 많은 말들, 사건들..

그리고 보이고 읽히는 (오히려 가장 가까운) 인간들의 이기심, 잔인함, 옹졸함, 비열함, 찌질함...


마치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간 듯,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에 가득차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저 스쳐지나가기를.

나는 이제 더 이상 어찌할 줄 모르고 울기만 하는 어린 소녀도 여린 새댁도 아니다. 


미운 이들이 잔뜩 생각나서 화가 났었다. 나의 삶은 왜 이리 혹독했었냐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빛이 느껴졌다. 답을 얻었다..  



겨우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일으켜 요가를 하고 성당을 찾았다. 

머리가 아픈 것도 조금 나아지고, 이곳에서의 시간을 좀 더 소중히 여길 힘도 얻는다.

이 온전하게 아름다운 꽃을 보았는가. 나는 지금 온전한 시간에 머물고 있는 거라고.
오늘 모처럼 오랜만에 해 지는 것을 보고 오다. 이렇게 눈부신 시간에 어두운 방안에 머물렀었구나.
선셋은 늘 나에게 큰 위로를 준다.
위로가 되어 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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