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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Mar 20. 2023

Ranunculus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순간에 머무르는 연습, Carlsbad

아주 오랫동안, 난 한 가지 일만 하면서 살지 못했다.

카이사르도 아닌 주제에,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여러 목적을 두고

아주 압축해서 많은 일을 처리하는 연습을 해왔다.

일하며 놀 궁리하고, 나와 가족들의 대소사를 모두 내 일인 양 껴안고 도맡아 처리하며, 

머리도 별로 좋지 않으면서 발생가능한 여러 경우의 수의 장단점을 모두 생각하며,

멀티태스킹을 생존의 도구로 삼으며 버겁게 살아왔다. 

해야 할 일, 처리해야 할 일을 수첩 빼곡히 적어가면서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또 수첩 가득히 해야 하는 일들을 다시 채우는 방식으로.


늘 심장은 두근거리고 마음은 바빴다.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그다음 순간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하여, 

돈을 버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시간 안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 서툴다.

하루하루 무언가로 추억할 거리로 가득 채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약간의 강박과 불안감.


나와는 달리 느긋한 우리 집 남자들은, 

이 아름다운 곳에서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다.


Carlsbad에 Flower Field '근처'에 놀러 갔다가, Ranunculus 화분 2개를 사가지고 왔다.

인위적인 화단보다는 지천에 널린 야생화가 더 좋기에 

(사실은 무엇보다 입장료가 너~~ 무 비싼 탓에)

현지인인척,  근처 도로 위에서 무지갯빛 꽃밭을 구경만 했다.


                        Carlsbad flower field-근처 도로 위에 꽤 많은 현지인들이 담장 너머로 꽃구경을 한다^^


입장료 1개 값에도 미치지 않으나, 우리 집에 데려와 두고두고 보는 라넌큘러스 꽃.

소박하나 화려한 이상한 꽃.


사실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와 달리 미국 아파트는 미국에서 사는 느낌이 그리 나지 않는다. 

어둡고 별로 예쁘지 않은 집에 영 정이 가지 않았는데. 

핑크색, 하얀색 라넌큘러스를 데려온 오늘,

괜히 멀리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마음이 너무 좋다.


바쁜 마음을 현재의 순간에 머물게 하는 신공을 거듭 연습하는 중이다.


요리 보고 저리보고. 하얀 봉우리 안에 연두빛이 겹겹히 모여있는게 너무 이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
참 고운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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