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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in Sep 28. 2023

Del Mar Beach

바보가 된 기분,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돌아가기 전에 몸과 마음이 좀 더 건강해지고 싶었다.

집 가까운 곳에 필라테스 강좌가 있다기에 등록을 했는데, 뻣뻣한 몸과 함께 들리지 않는 영어가 참으로 난감하다.  그간 운동이라고 하는 것이라고는 '시원한 바람맞으며 어슬렁 걷는 것' 또는 '수영장에 둥둥 누워 밤하늘 바라보기' 정도인데, 역시나 땀을 흘리는 운동은 그런 설렁한 운동과 차원이 다르다.


오늘은 매일 가는 토리파인비치가 아니라 델마비치로 향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비치는 태양빛이 참 아름답다.
저기 점처럼 둥둥 떠있는 것들은 새가 아니고 서퍼들이다. 오늘처럼 파도가 꽤 센 날에는 서핑을 정말 많이 한다.
멋진 서퍼들. 스키나 보드만큼이나 신나겠지? 



미국에서 겨우 일 년 정도를 지냈을 뿐이지만 이곳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느끼는 중이다.


J가 이번학기 처음으로 결석을 했다. 감기기운에 학교를 하루 쉬고 싶다고 하는데 선뜻 쉬라고 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언뜻, 학교 생활이 힘들다는 말을 한다. 10학년이 되자 AP과목도 많이 듣고 honor과목도 꽤 듣는데 AP physics 외엔 (아는) 한국아이들이 없고, 또 무엇보다 이과형에 내향적 기질이 강한 터라 미국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기도 친해지려 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몸이 힘들 땐 기분도 더 가라앉는 법인데 괜스레 미안했다. 꽤나 많은 수업을 친한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듣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H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씩씩 거린다. (보조) 영어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와서 숙제를 고치고 가라고 해서 갔더니. 세상에 chatGPT 같은 툴을 이용해서 cheating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고 한다. 9학년이 쓰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고 에세이가 너무 뛰어나다는 것이다. H는 미국에 도착하자마 eld class를 거치지 않고 바로 regular로가서 (그것도 매우 깐깐하게 가르친다는 선생님 수업-) English 8을 A로 마쳤다. sonnet 숙제를 할 때도 심지어 내가 chatGPT에 돌려서 네가 쓴 거랑 한번 비교나 해보자고 해도 무슨 소리냐며 절대로 그런 툴을 쓰려하지 않는 아이가 H다. 이번 학기에 english 9 honor로 충분히 갈 수 있었는데 혹시라도 너무 어려워서 힘들까 봐 그냥 english 9를 들었는데, 오늘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이다. 본인은 자기가 너무 에세이를 못 써서 다시 쓰라는 줄 알았단다. 한국 아이들이 잘 못한다는 또는 아시안이 이런 툴 등을 잘 쓴다는 선입견이 있는 선생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이런 오해를 살 만큼 H의 영어가 훌륭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다. 그 자리에서 영어로 조목조목 따지고, 돌아와서도 어떤 점이 부당한지에 대한 메일을 다시 한번 매우 정중하게 써서 보내는 것을 보면서-그리고 그 이메일이 나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멋진 것이기에- H가 참 멋지게 커 나가고 있구나.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방인으로서 이곳에서의 일상에서는 자주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보다 치열한 현장에서 나보다도 훨씬 외롭고 힘든 상황에 던져져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그런 기분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그저 '바보 같기만 한'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바보가 된 기분'. 이 기분은  백인의 모습이 아닌 아시안으로 미국에 살아간다면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 아닐까. 그 정도와 빈도가 다를 뿐,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아이들이 있다면 날마다 델마비치에 와서 저 놀이터에서 놀리겠지~ 바다 바로 앞 놀이터라. 저기 그네가 비었기에 슬그머니 한참을 그네를 탔다.
이 곳 사람들도 해지는 시간에는 참 많이도 바닷가에 앉아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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