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샌디에이고

나는 그저, 마음이 좋을 뿐. 늘 경계 위에 사는 우리에게.

by sojin

우리는 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살고 있다.

그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샌디에이고는 환한 햇살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도시인데

요즘엔 계속 비가 내린다.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람들은 샌디에이고 답지 않다고도 하고, 비가 내려서 너무 춥고 우울하다고도 한다.


비가 오는 날엔 그저 사무실에 앉아서 창밖을 흘깃흘깃 훔쳐보면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평일 이 시간에, 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고, 창문을 열어 비내음과 풀내음을 맡고,

재즈와 클래식이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을 한껏 크게 틀어놓고 온전히 나와 놀 수 있는 시간이라니.

나는 그저, 마음이 좋을 뿐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사랑은 연민(pity)에 기반한다.

연민은 '짠한 마음'을 말한다.

짠한 마음은 나를 움직여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게 하는 마음, 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 즉 돈의 이동을 수반한다.

경제적인 것에 기반하지 않는 '줌'이 사실 어디까지 설득력이 있겠는가.

돈이 아니어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 정성 이런 게 적어도 필요하다.

어떤 것이든, 온전히 나의 것일 수 있는 것을 떼어 주는 무언가가 있을 때,

비로소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받는 사람은 그 '받음'을 통해 고통과 힘듦이 줄어든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하지만, 나약해빠진 인간이라는 존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꽤 차가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이렇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기대(anticipating) 하고, 기댄다(leaning).

이렇게 '험블 한(해야 할, humble) 마음'은 '이기적'이거나 '구차'하거나' 아니면 '영악한' 마음을 넘나 든다.


이쯤 되면 주는 쪽의 마음도 확연이 다른 어떤 경계 위를 넘나들고 있다.

'짠한 마음'은 '아까운' 또는 '집착하는' 또는 '생색내는' 마음,

그리고 최악의 경우는 '상대방을 내 맘대로 하려는 마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의 경계 위에서 살며,

'짠한 마음'과 '내 맘대로 하려는 마음'의 경계를 넘나 든다.


샌디에이고도 시애틀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도 하고, 시애틀도 환하게 봄 햇살처럼 빛나기도 한다.

비가 내려도 샌디에이고는 샌디에이고이고, 햇살이 가득한 시애틀도 시애틀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으며 살고 있는 것, 그뿐이다.

그저, 순간순간을 '조심스럽게'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비 내리는 샌디에이고 한가운데 있다.



흐린날의 Twilight-토리파인 주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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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거나 비가오거나, 아름다운 것이 가득한 아름다운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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