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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겨울 Jan 20. 2022

수영이 고파요

그녀는 왜 수영장이 싫었을까


  3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는 물이었다. 수영은 실내외를 통틀어 제일 싫어하는 스포츠였다. 코와 입에 물이 차서 숨이 막히는 느낌에 곧 죽을 것 같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해 허우적 대는 게 몹시 불쾌했다. 그래서 물놀이는 여름휴가 리스트에서 늘 첫 번째 탈락 대상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함께 바다나 수영장이 딸린 펜션에 가야 할 때면 누가 물에 빠뜨리는 장난이라도 칠까 봐 겁을 먹고 물 근처에는 발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불안장애(양극성 기분장애) 약의 부작용으로 체중이 늘면서 스스로 운동을 찾게 됐다. 동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스피닝’을 처음 접했는데 그곳은 마치 클럽에 온 것 같은 빵빵한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는 음악 무대 같았고 거기에 요란한 사이키 조명을 더하니 주체할 수 없는 흥이 났다. 이런 게 바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는 걸까. 말 그대로 아드레날린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가뿐 호흡에 엄청난 땀! 어찌나 흥이 나던지 내 온몸을 불살라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자전거 바퀴를 굴렸다. 그 결과 얻은 것은 젊은 나이의 관절염.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밤에 자려고 누우면 무릎이 쑤시고 출근하려고 걸어가는 길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깝지만 미래의 내 관절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회차가 남은 회원권을 날려버려야 했다.

  


   무릎관절에 제일 부담을 덜 준다는 운동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수영이다. 유명하다지만 그래도 물 공포증이 심해서 내가 제대로 배울 수가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운동이 정말 절실해서 새벽에 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드니 치열한 경쟁 끝에 한자리 남은 그룹 강습에 들어갈 수 있었다. 초급반 5명이 한 조. 분명 초급반인데 나 빼고 다 잘했다. (어딜 가도 다들 나보다 잘해. 나만 못해.) 음-파-. 기본 중의 기본에서 나는 숨도 쉬지 못했다. 수영은 기본적으로 입에 물이 들어갔다 뱉어내는 과정의 반복인데 어쩐지 물에 내 침을 뱉어내면 안 된다는 기본예절 인식(?)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음-파를 하려고 하니 진도가 안 나갔던 거다. 숨 쉬는 타이밍과 요령을 습득하자 수영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도 쉬지 않고 레일을 왕복하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벽을 탁 차고 출발하는 폼이 “선수 같으신데요”라는 칭찬을 받자 이건 거의 한 마리의 돌고래가 됐다. 분명 숨 막히는 것에 공포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 숨 막힘이 없는 운동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틈만 나면 실내 수영장에 가서 음파 음파 하다가 대역병이 창궐하면서 2년간 그 좋아하던 것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좋은 호텔에 있는 수영장 갈래?”라고 물어봤다. 나는 오직 ‘수영’만이 귀에 들어와서 반자동적으로 “좋아!”를 외쳤고 예약을 마친 남편이 몇 가지 인스타 사진을 보여줬다. 문제는 그 사진들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수영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었던 내 머릿속 그것은 펼쳐진 레일이 있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숨 막히는 수영, 말 그대로 선수 같은 수영이었는데 남편이 보여준 사진 속 수영장은 ‘좋은 호텔’에 딸린 제법 멋진 곳이었다. 놀러 간다는 소식에 아이까지 몹시 기뻐하게  됐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인스타 사진을 보면서 속이 타들어 갔다. 비키니 입은 젊은이들은 이렇게 예쁜데 나는 왜 이렇게 쭈구리가 됐지 싶어서, 자존감이 하락했다. '왠지 거기서 나만 구릴 것 같아...'  아이의 수영복은 2년 만에 작아져서 더 이상 입기는 무리이고 하나뿐인 검정 래시가드가 마음에 든다며 가져가 버렸다. 내 몸뚱이를 가려줄 내 래시가드는 그거 하난데. 아이는 내년이면 또 키가 자라니 급하게 내 것을 사러 쇼핑몰에 갔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마음에 드는 래시가드를 찾기가 어려웠다. 온라인이라면 살 수 있었겠지만 당장 입으려니 마땅치가 않았다. 인스타 사진만으로도 한껏 움츠러드는데 옷도 없다니. 가기 싫은 마음에 내적 갈등을 일으키다가 그래도 수영은 포기할 수 없어서 요가복을 챙겨 호텔에 갔다.



  호텔에 딸린 수영장에 도착하니 입구에 몇 가지 수영복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나마 돈 아깝지 않게 오래 입을 수 있겠다 싶은 걸로 사서 입장하니 그곳은 인스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인스타에는 분명히 있었는데 수영장에는 없었다. 아이와 엄마 아빠 가족 단위로 사람도 많지 않고 검은색 긴팔 긴바지 래시가드를 입은 내 또래의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급하게 산 내 비키니가 머쓱할 정도로 제일 화려했다. 딸아이도 남편도 나를 보며 예쁘다고 칭찬해주니 배에 힘 빡주고 또다시 한 마리의 돌고래가 되어 물살을 갈랐다. 남편은 말했다. “거봐. 가면 잘 놀고 잘할 거면서 꼭 가기 전에 미리 걱정하고 그래~” 맞다. 맞는 말이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미리 겁을 먹고는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곤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배웠으니 다음에는 걱정보다 설렘만으로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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