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전하지 못하는 그리움

혼자 남겨놓은 자리

by 윤설

오늘도 괜히 휴대폰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별일 없는 안부 하나면 충분한데

"무심한 녀석".

그 말만 오늘도 마음속에서 삼킨다.


그리움은 커지지만 전하지 않기로 한다.

지금 네가 서있는 자리에 엄마의 그리움이 짐이 될까 봐

너의 하루가 엄마의 그리움 때문에 무거워질까 봐.


잘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어디서든 너는 네 몫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괜찮냐'는 말도,

보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기로 한다.


놓아 보내는 날들마다 살을 베는 듯 쓰라렸다.


그래도 붙잡지 않는다.

아이의 발걸음이 흔들릴 때마다

휘청여도 일어설 작은 힘만은

남아 있기만을 기도했다.


단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단하루도 쉬운 날도 없었다.

기다리는 날들마다 마음 한쪽이 베어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말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이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법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아이처럼 움직여야 숨 쉴 수 있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한참 후에야

나는 다른 멈춤을 배우게 되었다.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마음은 한자리에 남아

아이를 기다리는 방법을.


통제와 붙잡는 대신 자리를 남겨두고.

나처럼 움직여야 숨 쉴 수 아이를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는 쪽을 나는 선택했다.


언제든 돌아와 숨 고를 수 있는 자리,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조용히 다시 돌아와 몸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아이들은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그 사실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 역시 가만히 있으면 아픈 존재라는 걸.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방식으로 흔들리며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엄마는 그 과정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붙잡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용히 내가 먼저 살아가기로 했다.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불안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가는 모습을

말 대신 삶으로 남기기로 했다.


기다리면서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혼자서 꾸꾹 눌러 담을 뿐,

아이의 삶이 내 그리움으로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움직였고 움직이며 버텨온 나는

끝까지 그런 한겨울 속 봄으로

씨앗자리를 내미는 엄마로 살고 싶다.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는 멀리 가도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말 없이 놓아준다.


붙잡지 않는 대신 늘 비워져 있는 듯

단 한순간도

비워두지 않았던 자리를 아이에게 남겨둔다.


언젠가 아이가 이 시간을 알게 된다면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늘 거기 있었고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기다림은

다그치지도, 불러 세우지도 않은 그리움이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날들 역시

사랑이었다는 것을.


전하지 못하는 마음만 오늘도 조용히

여기에만 남겨둔다.

작가의 이전글7.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