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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o May 25. 2022

네, 아직도 백수입니다.

언제까지 흔들릴까요?


추리닝, 슬리퍼, 안경, 떡진 머리

전형적인 백수 클리셰. 요즘 내 모습이다. 페이스타임이 온다면 제발 끊어줘! 애원할 수밖에 없다.


사고 싶은 옷이 생겼다가도 어디 입고 갈 데도 없어 장바구니에서 지우고. 친구들 사이에 경락이 유행이라 나도 한 번 받아볼까 싶다가도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그 돈으로 백수의 날을 더 사자 싶고. 로션을 바르고 선크림 뚜껑을 열다가 '맞다, 나 갈 데 없지' 하며 내려놓는다.


서른이란 나이를 향해 달음질하고 있는 나는 너무 너무 불안하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진짜 불안하다. 미래를 붙잡고 묻고 싶다. "저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보단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디서 어떻게 큰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여전히 모르겠어요." 감당이 안 되는 날엔 드라마라도 보며 엉엉 울어버린다.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 말고 내겐 또다른 불안함이 있다. 엄마, 아빠한테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은데 시간이 야속하게 빨리 흘러서다. 혹여나 갚을 기회 마저 잃을까 봐 겁이 난다. 누군가의 믿음과 베풂에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큰 보답이라는데 잘 살아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스무 살에 집을 떠나오면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 아빠를 떠올린다. 아침에 눈을 떠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드라마를 보면서도, 잠자리에 다시 누워서도 떠올린다.


일을 관두고 나서는 엄마와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나누고 있다. 나는 '엄마 나 이거 해 먹었어. 요리에 취미 붙이는 중. 오늘은 여기 가보려고. 오늘은 누구 만나.'하는 일과 보고라면 엄마는 아빠와 오빠의 흉을 보거나 오늘 한 일들을 읊는 고생 보고다.


밥벌이는 하지만 연락을 못하는 딸 vs 밥 벌이는 못하지만 연락은 자주 하는 딸. 뭐가 더 효도에 가까울까.. 밥벌이를 하면서 연락을 자주 하면 좋으련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엄마의 부재중 알림을 이틀이 지나서 보는 날도 있었다. 몇 달 전의 엄만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전화했었네' 말하는 딸의 통화를 받아야 했다.



지난 4월엔 본가에 일손을 도우려 내려갔다. 2주가 다 되어가는데도 서울에 안 가고 집에 있으니 동네 아저씨들은 내게 휴가를 받았냐고 물었다. 엄마, 아빠는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떼거나 얼버무렸다. '저 아저씨들 알면서 물어본다니까!' 짜증이 났다. 더 이상 불편한 질문을 하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

"저 백수예요."


엄마는 멈춰 있는 내가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엄마도 쉬어본 적이 없어서 내게 별다른 조언을 하진 못했다. 용돈 좀 줄까, 쉬면서 천천히 알아 보란 말 뿐이었다.


쳇.

그래 놓곤.

며칠 전에 엄마가 이런 카톡을 보냈다.


- 바빠서 집에 좀 와 있으라 하고 싶은데, 동네 사람들이 아직도 놀고 있냐고 할까 해서.


백수인 내가 떳떳한 딸은 아니었겠지. 물론, 천천히 하란 것도 진심이었을 테고. 지난 날 독하게 공부하고 밤낮없이 일 했던 딸이었기에 조금은 쉬길 바라면서도, 그 자랑스러웠던 딸의 쉼이 너무 길어지진 않기를 바랐을 거다. 엄마도 내 마음만큼이나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어쩌면 나보다 더 조급할 지도 모르겠다. 몸도 어제와 다름을 느끼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진 지금. 친구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 손녀 사진을 자꾸 들이밀며 자랑질을 하고 있으니.. 정작 내 아들, 딸은 결혼은 무슨. 번듯한 직장조차 구할 생각이 없어보여 답답할 거다. 언제 엄마는 말했다. "혜원아, 엄마도 손자 생기면 저러려나? 없는 사람한테 계속 이 영상, 저 영상 보라고 하니까 싫더라고." 맞다. 함께 나누는 건 소통이지만 일반통행은 자랑이다. 자랑이 잦으면 과시고.


엄마, 아빠 나이쯤 되면 자식들에게 어떤 걸 원하는지 안다. 아는데. 급하다고 해서 남들을 따라가고 싶진 않았다.


엄마의 톡에 대답했다. 엄마에게 나의 백수 생활이 구속이 아니었으면 해서 일부러 더 뾰족하게 남겼다.

- 엄마, 신경 쓰지 마.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 쉬겠다는데. 지들이 생활비 줄 것도 아니면서! 자기 자식들은 쉴 돈도 못 모아둬서 그래.


엄마는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 엄마 인생의 반을 나와 보냈다니 마음이 요상하다. 29살의 엄마가 대단하고, 포기한 것들이 많았을 거란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29살 개딸은 아직 책임질 것들을 넓힐 용기도 생각도 없다.


친구가 보내준 글귀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 꽤 오래 늪에 빠져있었다. 퇴사를 하고 뭔가를 배웠거나 이뤄낸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제대로 쉰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몸은 편안한데 그게 좋지만은 않았다.


알고 보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건 아닐까, 날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젤 큰 문제는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무기력했다. 무기력해서 뭔가를 시작할 생각이 들지 않고. 악순환이었다.


매일 아침 일력을 스르륵 넘기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벌써 5월 24일이었다. <어머 5월도 끝나가네. 아까워. 아까워. 이 시간이 아까워. 나 어떡하냐 진짜> 그대로 러그 위에 주저앉았다. 내가 이 시간이 왜 필요했더라? 그토록 원했던 시간 아닌가? 어쩌면 퇴사가 답이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갈까? 가슴이 출렁였다.


돌아간다고 해도 이렇게는 절대  되지. 1월에 퇴사를 하며 써놓은 글을 다시 꺼내봤다. 내가 멈추겠다 다짐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쉼을 원했던  아니었다. 다른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원했던 시간이었다.  많이 경험하고 맞는 일을 찾거나 혹은 이전에 했던 일이 나랑  맞긴 했었구나 깨닫기 위한 멈춤. 그런데 너무 오래 햇살에 심취해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때도 뭔가를 해야 쉬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야하는 사람.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생산자여야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아 스스로에게 실망한 늪이었다.


답을 못 찾고 돌아가면 30대엔 더 지독한 방황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은 이십대는 기꺼이 더 흔들리고 뛰어오르고 날아오르고 넘어지고 떨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려고 한다. 사흘 돌이 이번 생은 망했다와 나도 할 수 있다 사이를 오가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외침이 더 잦아질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 매일 기록하고 하루를 되돌아봐야지. 백수였던 날의 기록이 언젠가는 날 소생시켜줄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이 일지가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제발






* 1월, 퇴사를 하며 남겨놓은 글도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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