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화. 내 딸의 남자친구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앞으로는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뛰어난 역량과 재능을 가진 후배들을 발굴, 양성하여 이 영광의 순간이 미래의 작가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





“네! 제33회 대한민국 인류문화발전대상 소설부문 공로상에 이어 대상을 수상하신 이우준 님께 여러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





상패와 샛노란 프리지아 꽃다발을 손에 든 나는 무대를 내려왔다. 스물일곱, 다소 이른 나이에 작가로 등단한 이후 30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간 상복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시상식에서 대상과 공로상을 동시에 수상한 건 처음이었다.


1994년, 당시 4대 신문사 중 하나였던 한양일보사 신춘문예에 「시선」이란 단편소설로 등단한 나는 그렇게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내 아내 정희를 만난 것도 그쯤이었다. 물론 무당이었던 내 어머니도 그때는 곁에 계셨다.


등단 이후 출간된 내 소설가운데 주목을 받지 않은 작품은 거의 없었다. 나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손을 거쳐 간 작품 대부분은 호평 일색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올해 그 빛이 절정에 이르렀다. 5년 전 미치광이 천재 과학자의 타임루프를 소재로 쓴 판타지소설이 영화로 제작되며 천만관객을 찍어버린 거였다.


영화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각국으로 수출되었다. 소설책마저 다시 역주행을 했다. 내 손에 대상과 공로상, 두 개의 상패가 쥐어진 이유였다.


무대를 내려와 자리로 걸어가는데 멀리 객석에서 아내 정희가 보였다. 가슴 한가득 각양각색의 장미가 섞인 꽃다발을 안은 그녀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내 아내가 웃었으니.




***




시상식이 끝난, 아직 9월의 해가 높게 떠있는 오후였다.


긴장이 풀리니 이마에 맺혔던 식은땀이 식었다. 그러나 아직은 얼떨떨한 발걸음이 나를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곧 저만치 검은 세단 운전석에 앉은 정희가 보였다. 날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도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철컥




“이우준 작가님! 대상과 공로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아름 꽃다발을 안기는 여자. 50이 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내 아내였다.




“고마워, 다 당신 덕분이야.”

“내 덕분은 무슨. 글은 혼자 써놓고.”

“내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늘 뒤에서 다 받쳐줬잖아. 뒷바라지가 보통 수고야?!”




내 말은 진심이었다. 아내를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희생’이었다. 정희를 보면 늘 미안한 이유였다. 가족을 위해 그 좋아하던 교편을 내려놓을 결심을 했으니. 딸 유림이를 출산한 직후였다.




“어머, 이이가 웬일이래? 아무튼 알아줘서 고마워. 오늘 우리 집 겹경사니까 빨리 들어가서 준비해야지.”




시동을 거는 정희는 들떠있었다. 내 지분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분은 딸 유림이 거였다. 내년이면 20대 끝자락, 29살이 되는 하나뿐인 우리 딸이었다.


허니문과 함께 찾아온 생명의 축복에 정희는 무난히 셋째까지 계획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 더 이상의 축복은 없었다.


1년 만에 생긴 둘째는 임신 4주, 셋째는 2개월 만에 자연유산 되었으니까. 당시 어머니는 정희 몰래 제를 올리고 굿판을 벌이기도 하셨다. 그러나 더 이상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어머니는 내게 하늘이 태를 닫았다 했다.


무남독녀 외동딸 이유림이 우리 부부에게 다시없을 축복인 이유였다.


그런데 23살, 첫 연애를 실패하고 몇 날 며칠을 울고불고하더니 비혼주의를 선언한 유림이로 집안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하필 딸이 사랑에 빠진 놈이 인면수심의 바람둥이였다.


그때 나는 머릿속에서 그놈을 수만 번 때려눕혔다. 드라마 같은 로맨스를 꿈꿨던 순진한 우리 딸 마음을 산산 조각낸 놈이었으니. 모질고 지독한 첫사랑의 아픔은 그런 내 딸에게 사랑의 순기능을 외줄 위의 감정으로 각인시켰다.



그런데, 그랬던 내 딸이 무려 5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니 근데, 유림이 이 녀석은 기껏 봉사활동 보내놨더니 가서 연애만 한 거 아니야?”




내가 농담 섞인 의심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독실한 신자인 아내를 따라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유림이었다. 그런데 신앙이 와닿지 않았는지 아이는 이내 싫증을 냈다.


아내가 딸에게 봉사활동을 권유한 것 또한 대학생이 된 유림이가 슬슬 교회에 발을 빼기 시작할 때쯤이었다.


다행히 봉사에 보람을 느낀다는 딸 덕에 마찰 없이 지금까지 왔다.




“아니, 내 기도가 이루어진 거야.”

“기도? 무슨 기도?”

“이따 보면 알아.”

“그래……? 근데, 유림이 남자친구라는 사람은 어떻게 벌써 우리 집에 인사 올 생각을 했대?”




의아한 일이긴 했다. 2주간 네팔 해외봉사활동을 마치고 딸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때문에 유림이는 오늘 내 시상식에도 오지 못했다.


그런데 귀국하는 오늘, 딸은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것도 봉사 중에 만난, 연애한 지 고작 2주밖에 안 된 남자친구를.




“내 말이. 나도 기대 안 했는데 유림이가 부탁한 건지, 온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니까.”

“허! 어떤 놈이길래 이리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자세히 봐야겠네.”

“당신도 참.. 남의 귀한 아들한테 놈이 뭐야?! 오늘은 순수하게 당신 축하하러 오는 거라니까 괜히 폼 잡지 말고 고맙다고만 해. 5년 만에 유림이 마음 바꿔 놓은 귀인이니까.”




아내의 훈계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짧지만 교편을 잡았던 이력 때문인지 늘 말솜씨가 좋은 아내였다.




“이제, 당신만 남았어.”

“뭐가?”

“어머. 잊었어? 당신 나와 연애할 때 잠깐 교회 다니다 유림이 낳고 바로 발길 끊었잖아.”

“아, 잊긴…. 그래서 솔직히 고백했잖아. 난 무신론자라고.”

“감쪽같이 나 속인 거 생각하면 아직도 화나.”

“그래도 용서했으니까 30년을 살지. 안 그래?”




말끝에 요란하게 폰이 울린 건 정말 다행이었다. 결국 웃고 마는 정희와 쏟아진 축하전화에 정신없는 사이 동네에 들어섰으니.




***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남색 대문을 열고 나는 정희와 집으로 들어섰다.


담장을 덮었던 담쟁이덩굴과 정원을 수놓았던 꽃들은 이미 지고 없었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푸르른 잎들이 여전한 여름의 끝자락을 알렸다.


오래된 감나무 옆, 우물의 두 배 크기만 한 연못 속 잉어들도 생동감이 있었다. 거기다 내가 직접 설계해 올린 가족을 위한 2층 보금자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koi-5277213_640.jpg



널따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매입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지난 세월.



10년 전 나는 그 꿈을 이루었고 어머니가 남겨주신 유산, 감나무를 고향집에서 옮겨왔다.


외할머니에 이어 17살에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마을의 수군거림에 입꼬리를 올리셨고 따가운 눈총에 눈을 치켜뜨셨다. 내게도 늘 꼿꼿이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라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행여 당신이 사라지거든 고향집 감나무를 늘 곁에 두라 하셨다. 그리고 그 유언 같은 말씀을 끝으로 3년 뒤, 어머니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셨다.


감나무를 두고 고향집을 떠날 수 없던 나는 이후 쉼 없이 글을 쓰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17년 후, 나는 감나무와 함께 고향을 떠났다.




“어째, 올해는 감이 더 많이 열리겠네.”



persimmon-4735631_1280.jpg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자그마한 열매들이 탐스러웠다. 놔두면 알아서 자생한다는 어머니 말씀이 맞은 거였다. 내년에도 나의 운수가 대통할 모양새였다.




“당신 거기서 뭐 해?”




정희였다. 앞서 들어간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는 걸 깜박했다.




“아, 벌써 저렇게 감 열매가 열렸나 싶어서.”

“벌써라니, 열린 게 언젠데. 아무튼 얼른 들어와. 유림이 올 때 다됐어.”

“어? 어.”




***




새벽부터 그러더니 정희는 여전히 분주했다.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만 꺼내는 노생차(老生茶)를 준비하는 것부터 찻잔, 과일접시, 티스푼까지 고심에 고심을 더했다. 주먹만 한 새빨간 딸기를 깨끗이 씻어 건네는 나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오늘 내가 주인공이 맞긴 맞는 건가? 허허.”




괜한 섭섭함에 내가 쓴웃음 섞인 농담을 던지자 그제야 정희가 나를 돌아봤다.




“어린애처럼 왜 그래?! 자식 이기는 부모 어디 있다고.”




말은 그리하면서도 미안했는지 정희가 가장 큰 딸기를 건넸다.


얼추 손님 맞을 준비가 끝나고 나니 슬슬 딸의 남자친구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내 딸의 마음을 열게 했는지.. 행여 이번에도 로맨스 드라마를 재현시키지 못할 녀석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그 사이 탁자에 놓아둔 정희 폰이 울렸다. 유림이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전화였다.




“여보, 나 괜찮아?”




긴장했는지 옷매무새를 만진 정희가 물어왔다.




“당연히 괜찮지! 상견례 아니니까 긴장 풀어. 엄연히 오늘은 내가 축하받는 자리야.”




철커덕!



곧 현관문이 열리고 딸 유림이가 들어섰다. 2주 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이지만 세상 가장 예쁜 내 딸이었다.




“엄마 나왔어! 아빠! 수상 축하드려요!!”




오늘 길에 들렸는지 유림이가 푸른 빛깔의 수북한 수국꽃다발을 내게 안겼다. 한데, 예전 같으면 수다스럽게 떠들었을 딸이 오늘은 얌전했다. 아마도 뒤이어 등장할 주인공 때문인 듯했다.




“오빠! 들어와.”




유림이 한마디에 딸 캐리어를 끌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선 그가 보였다. 그는 정희와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