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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0년 전 죽은 놈이 멀쩡히 살아있을 리가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친할머니께서 자네를 버린 이유도 말씀하셨던가?”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한밤중 갑자기 제 목을 조르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사실을 알고 목 놓아 우시더니 짐가방을 챙기시더군요. 그리고는 절 데리고 기차에 올라타셨습니다.”




오승욱은 내내 차분했다. 도무지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곧은 얼굴이었다. 눈동자에도 그 음성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믿지 않으려는 내가 속물 같았다.


과거라고 해봐야 더는 듣지 않아도 될, 굴곡졌을 인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가 진짜 오승욱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친할머니께서 어린 자네 손을 놓으며 뭐라고 하시던가?”

“너무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렴풋이 절 버리는 게 아니라 지켜주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런…….”




말끝에 정희가 결국 눈물을 훔쳤다. 애써 눈물을 삼키려 바짝 고개를 든 유림이도 보였다.


누가 들어도 한 청년의 딱하고 기구한 인생사였다. 그러나 나는 더욱더 눈을 부릅떴다. 30년 전 죽은 내 친구는 사기꾼을 능가하는 기막힌 이야기꾼이었다.




“그래서, 교회 목사가 결국 자네를 거뒀나?”

“아빠, 이제 그만 물어보시면 안 돼요? 오늘 처음 봤는데 오빠 불편하게 왜 그래. 앞으로 대화할 시간도 많은데……. 오늘은 아빠 축하하러 온 거니까 즐거운 얘기만 해요. 네?”




파고드는 개인사에 심통 난 유림이가 투덜거렸다. 뭔가 곤란할 때마다 방어벽처럼 꺼내는 존댓말이었다. 다만 오늘은 통하지 않았다. 내 인생 전부가 걸린 일이었다.


곧 오승욱이 입을 열었다.




“숨길 이야기도 아니라 전 괜찮습니다. 당시 교회 앞에서 울고 있는 절 발견한 어떤 분이 목사님께 데려갔고 제 손에 쥐어있던 쪽지를 읽어보신 목사님께서 절 거둬 키워주셨습니다.”




나는 미약한 두통을 느꼈다. 어쩌면 생김새만 똑같을 뿐, 죽은 내 친구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긍정의 시그널이었다.



10여 년 전 출간한 소설 「거울의 방」 소재로 쓰였던 도플갱어.



복제인간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판에 박은 얼굴이지만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생을 살아간 두 인물의 이야기였다.


언뜻 반듯하고 정직해 보이는 오승욱이었다. 주양현만큼 말재주가 있으나 거짓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소설 속 도플갱어가 실존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었다.


잔뜩 날 세웠던 의구심을 접으니 인간 오승욱이 보였다.


딱한 인생이었다. 미래를 응원해 줄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내 딸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키운 내 보물이었다.


저놈이 주양현이든 오승욱이든 간에 내 딸과 어울릴 수 없는 이유였다.




“양부모님께서는 어쩌다 유명을 달리하셨나?”

“군 제대 후 복학해 대학졸업을 앞둔 12월 중순경 교회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불이 났고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전소된 후였습니다. 안에 계시던 부모님 또한 나오지 못하셨고요.”




덧붙여 오승욱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마친 뒤 교회에 불이 났다는 말에 뒤늦게 달려갔지만 치솟는 불길 속에서 끝내 부모님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내와 동떨어진 외진 산골마을이다 보니 소방차 진입이 어려웠고 마을주민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불길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담담하던 오승욱의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그의 표정 깊숙이 담긴 감정이 지나치리만큼 인간적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잘 버티고 잘 일어섰네요.”




공감력이 풍부한 정희가 그를 위로하자 오승욱이 간단한 목례로 대답을 대신했다. 관찰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세월이 흘렀다지만 주양현이라면 절대 정희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55세의 나이에도 그녀만이 가진 고운 얼굴선과 우아한 자태는 그 옛날, 25살의 정희 그대로였으니까.


그러나 오승욱은 정희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그저 예를 갖춰야 할 여자친구의 어머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사람 말대로 잘 추스른 것 같아 다행이네.”

“감사합니다.”

“참, 중요한 걸 안 물어봤군. 내 딸이 화가라는 건 알고 있을 테고, 자네는 직업이 뭔가?”




나는 거리낌 없이 물었다. 내 머릿속에 남은 일말의 의심들을 잠재워줄 중요한 시험대였다.


피부가 그을긴 했으나 남자치고는 유난히 고운 손이 눈에 띄었다. 마디마디 긴 손가락과 정결하게 잘린 손톱만 보아서는 흡사 주양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덕지덕지 기름때가 묻은, 채 아물지 않은 잔상처가 즐비했던 그것과는 결이 다른 손이었다.




“목사입니다.”

“……목사?”

“네.”




순간 나는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정희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정희를 갖기 위해 잠깐 교회를 다녔던 무신론자인 나. 성경책 한 번 읽지 않은 모태신앙 딸 유림이. 반면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


그런 가운데 정희가 무엇을 기도했을지는 뻔했다. 저리 함박 웃음꽃이 핀 걸 보니…….


그러나 무신론자인 내게 목사는 감흥이 없는 직업이었다. 그저 교인이 많아 헌금이 풍성하면 대박, 아니면 쪽박인 사업일 뿐.




“표정 보니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네.”

“그게, 글쎄 유림이가 내가 좋아할 만한 사윗감을 만났다면서 먼저 설레발을 치더라고.”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을 미안해하면서도 연신 웃는 정희였다. 나도 아내에게 뿌린 죄가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매일 나한테 넌 목사 남편을 만나야 그나마 성경을 펼쳐보기라도 할 것 같다고 한숨 쉬었잖아.”

“네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 나고?”

“왜, 유림이가 뭐라고 했는데?”

“글쎄 본인은 모태불교신자 만나서 같이 타로점 보러 다닐 거라고 하더라고. 기막혀서 참…….”

“뭐? 이 녀석이 사춘기도 아니고, 네 엄마 속을 아주 제대로 긁어놨었네.”

“그래서 결국 엄마가 원하는 사람 데려왔잖아. 나 효녀지?! 헤헤.”




혼자 속 끓는 와중에도 나는 웃음이 나왔다. 다소 뻔뻔한 유림이에 전환된 분위기가 괜찮았다. 어이가 없었는지 웃어버리는 아내도 예뻤다. 덩달아 눈치를 살피던 오승욱도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가 위로 처연한 눈빛이 보였다. 이런 화목한 가정이 그리운 듯했다.




‘그럼 그렇지. 30년 전 죽은 놈이 멀쩡히 살아있을 리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어느새 나는 주양현을 잊고 목사 오승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비혼주의를 선언했던 딸의 철장 같은 마음을 연 남자친구로서.


결단코 결혼은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그 공로를 인정해 당분간은 놔둘 생각이었다.




“누가 네 아빠 딸 아니랄까 봐 능청스럽기는. 오승욱 씨가 우리 유림이 좀 많이 이해해 줘요.”

“유림이한테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거봐! 오빠는 상관 안 하잖아. 나한테는 교회 얘기도 거의 안 하는데, 엄마만 난리야.”




마냥 해맑기만 한 딸 앞에 어쩔 줄 몰라하던 정희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좋은 분위기를 틈타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한데, 교회는 어찌하고 해외봉사를 간 건가?”

“목사안수를 받은 선교사 동료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렇군. 근데 서른다섯에 목사라면 좀 이르지 않나? 혹시, 추천받았나?”

“아닙니다. 원래는 선교활동을 다니다 올 초 교회를 개척하라는 말씀이 임해 실행하게 됐습니다.”




‘말씀 좋아하네. 일찍 교회 부흥시켜 편히 누리려는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과거 사연은 딱하나 욕망은 별개의 문제였다. 이른 나이에 목사가 된 것만 봐도 시커먼 속내가 투명하게 읽혔다.




“그럼 교회는 어디에 있나?”

“중곡동 한 상가건물 지하에 있습니다.”

“교인은, 얼마나 되지?”

“약 30여 명 정도 있습니다.”

“이런, 6개월이 넘었는데 전혀 부흥이 안 됐군.”

“…….”

“유입이 잘 되려면 자고로 설교가 흡입력이 좋아야 하는데 말이야. 대형교회들처럼.”

“저는 다만 말씀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30명 가지고는 자네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울 텐데, 순종이 아니라 고집 아닌가?”




사실을 직시했을 뿐인데 나는 금세 날 선 시선에 갇혔다.


토라진 입술에 원망 섞인 딸의 눈빛. 귀 따가울 잔소리를 각오하라는 가늘어진 정희의 눈매.


불쾌했는지 오승욱도 낯빛이 변했다.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네 놈이 결코 모두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렸으니.


그런데 곧, 오승욱이 웃음을 보였다.




“수박 겉핥기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이해합니다. 선생님 시선.”




‘저 자식이…… 나랑 붙어보겠다는 거야 뭐야?!’




날 쏘아보는 정희가 아니었다면 눈알을 부라렸을 나였다.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이 사뭇 거만하게 느껴졌다.


얼굴이 굳어진 나를 뒤로하고 곧 정희가 일어섰다. 괜찮다는 오승욱에게 한사코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과욕이었다. 게다가 무슨 생각인지, 식사준비를 돕겠다고 따라 일어난 나를 앉히고 아내는 유림이를 데려갔다.





*





한순간 어색해진 적막이었다. 결국 내가 먼저 입을 뗐다.




“큼! 집사람 눈에 자네와 내가 좀 더 친해지길 바랐나 보군.”

“선생님 원작소설영화 「플라잉」 잘 봤습니다. 소설만큼 미치광이 과학자의 내면 깊은 양면성이 장면 곳곳 섬세하게 배어있더군요.”




‘건방진 자식!’ 나는 또 한 번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속담을 들먹이며 나를 농락한 놈의 새치 혀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방어막이었다.




“교회를 개척 중이라면서 문화생활 할 여유는 있었나 보군.”

“세상에 귀속되진 않되 돌아가는 현실은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베스트셀러였던 선생님 책도 거의 다 읽어봤습니다.”

“그래? 그럼,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은 뭔가?”




내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오승욱이 대답했다.




“2014년에 출간하신 「꽃밭의 나라」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탐욕에 살이 붙으며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주인공 이학신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선생님 감정이 잘 느껴지기도 했고요. 아, 「카이로스」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내 소설을 언급하는 오승욱에 나는 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책을 통해 작가의 감정을 느꼈다니, 글을 좀 읽을 줄 아는 놈이었다. 그 옛날 주양현이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자네가 만약 소설 속 이학신이라면 어쩔 건가?”

“저라면 멈췄을 겁니다. 순수한 열정이 광기로 변질되는 이학신이 불쌍했거든요.”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을 자네는 광기로 보았군.”

“선생님은요? 만약 선생님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난…….”




잠깐 숨을 고른 나였다. 대답을 기다리는 놈의 묘한 눈빛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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