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식사 후 2층 유림이 방을 구경하고 내려온 오승욱은 야무지게 과일까지 챙겨 먹고는 달이 중천에 떠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정희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잠을 청한 나는 새벽녘, 홀로 정원을 거닐다 서재로 향했다.
***
햇수로 27년 만이었다. 일요일 아침 내가 교회로 향한 건.
물론 며칠사이 없던 믿음이 샘솟은 건 아니었다. 정희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니었다. 그저 오로지 오승욱, 놈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함이었다. 하여 나는 오승욱이 있는 중곡동 교회로 향하는 중이었다. 차량 뒷좌석에 앉은 아내와 딸 유림이와 함께.
“세상에, 이게 꿈이야 생시야?”
“엄마도 참, 그렇게 좋아? 나랑 아빠가 교회 가는 게?”
“좋지 그럼! 그동안 엄마 혼자 얼마나 외로웠는데.”
“에이, 그래서 내가 이렇게 목사 사위 데려왔잖아. 헤헤!”
“그래! 우리 유림이가 효녀네. 목사 사위 하나면 다 해결될 걸 그동안 왜 걱정했는지 몰라.”
끼이익-!
모녀의 대화에 나는 그만 급정거를 했다. 하마터면 횡단보도를 건너던 반려견과 아주머니를 칠 뻔한 거였다.
“깜짝이야! 당신 괜찮아?”
몸이 앞으로 쏠려 놀란 와중에 정희가 내 걱정을 했다. 오승욱 앞에서 백지장처럼 변했던 탓인지 부쩍 나를 챙기는 아내였다.
“잠깐 딴생각을 했네. 둘 다 괜찮은 거지?”
“괜찮아. 근데 무사고 30년이라고 당신 너무 자신하는 거 아니야?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걱정하는 정희에 나는 덤덤히 웃어넘겼다. 하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한은 어쩔 수 없었다. 자칫 큰 사고를 낼 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오승욱이 가족이 된다는 건……. ‘사위’라는 한마디에 내 숨통이 조여 온 이유였다.
“조심할게. 근데 유림이 연애한 지 이제 한 달도 안 됐는데, 목사라고 당신 너무 신뢰하는 거 아니야?”
“당신도 참, 사람 한두 번 봐?! 몇 마디 나눠보면 감이 오잖아. 진국인 거.”
“사람을 잠깐 보고 어떻게 그 속을 알아?! 요즘 성직자 범죄가 얼마나 많은데.”
“오빠 그런 사람 아니거든!”
듣다못해 씩씩거리는 유림이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일부에 극한 된 일임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일부에 오승욱이 포함되길 바랐다. 이왕이면 교회도 부흥되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 연애는 한 1년이면 되겠지?”
“응. 오 군이야 사계절 볼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네가 너무 서두르면 부담될 수도 있으니까.”
“신혼집은 방이 많아야겠어. 오빠 서재랑 내 화방도 필요하니까. 대신 주방은 간소해도 되고.”
“그러네. 나중에 방 많은 집으로 알아봐야겠다.”
꽃밭 속 잡초 같았던 내 의견은 금세 묵살되었다. 목사 사위에 아내는 벌써부터 들떠있었고 딸 유림이는 이미 새 신부가 되어있었다. 물론 내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마치 공들여 만든 둥지 위에 날아든 까마귀가 내 보금자리를 가로챈 기분이었다.
듣자 하니 오승욱이 먼저 내 딸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유림이가 스스럼없이 아이들과 장난치는 모습에 호감을 가졌다고 했다.
그런 뜻밖의 고백에 유림이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꽤 봐줄 만한 얼굴에다 덕지덕지 미소를 처바른 말재주꾼이니. 하필 그것마저 그 옛날 주양현과 똑같았다.
의심과 확신사이, 내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타는 이유였다.
***
“저긴가 보네. 저기 하얀 건물.”
내비게이션을 따라 도착한 내가 차에서 내리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사방 곳곳 흠집 난 콘크리트 벽에 묵은 때가 내려앉은, 30년쯤은 되어 보이는 3층짜리 상가건물이었다. 1층 양쪽에 놓인 세탁소와 미용실 사이로 건물 출입구가 보였고 안쪽으로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언뜻 눈에 띄었다.
“저 위에 간판도 있네.”
3층 외벽 꼭대기,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하얀 십자가 옆으로 교회 명이 들어간 간판이 보였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단조로운 색상이었다.
「호산나 교회」
“촌스럽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나는 앞장서 건물입구로 들어가 곧장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채 열댓 개도 되지 않는 계단 끝 왼편으로 하얗게 페인트칠이 된 철제문이 보였다. 문 상단에는 작은 십자가와 함께 「호산나교회」라고 쓰인 상호명이 붙어있었다.
“호산나? 이름 예쁘다. 근데 엄마, 저게 무슨 뜻이야?”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러니까 평소 성경공부 좀 하라고 했잖아. 으이구!”
“이제부터 하면 되지 뭐. 승욱 오빠가 괜찮다고 했거든!”
“자랑이다! 그나저나 외관이 깨끗한 게, 우리 오 군이 애썼네.”
모녀의 대화에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오승욱의 음성 때문이었다. 이미 예배가 시작된 듯했다.
“쉿! 우리가 좀 늦었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리 멀지 않은 강단 위로 오승욱이 보였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설교하는 모습이 제법 반듯한 품새였다. 그는 느지막이 들어선 우리를 인지한 듯했다. 그러나 딱히 눈길을 주진 않았다.
강단 앞 양쪽으로 늘어선 긴 의자에는 드문드문 교인들이 앉아있었다. 학교 교실만 한 크기에 청소가 잘 되어있는, 그야말로 아담한 예배당이었다.
그사이 내 앞에 선 정희가 나와 유림이를 맨 뒷줄, 빈 의자에 끌어 앉혔다.
“오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신실한 성도답게 챙겨 온 성경책을 펼친 정희는 두 손 모아 경청하는 중이었다. 오승욱 설교를 들어보겠다고 다니던 교회를 빠지며 온 거였다. 반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운 유림이는 그저 달콤한 초콜릿과 사랑에 빠진 아이처럼 오승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로지 팔짱을 끼고 다소 삐딱하게 앉은 나만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오승욱을 주시할 뿐.
과거 내 친구였던 주양현은 종교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던 그날, 그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갔었다. 나와 함께.
물론 신앙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의 못다 이룬 꿈은 애초에 목회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때문에 나는 강대상 앞에서 저렇게 침 튀기며 복음을 전하는 저 얼굴이 낯설었다. 그리고 낯설기에 불안했다.
주양현과 친구가 된 후 녀석은 내게 숨기는 게 없었다. 그래서 수월했다. 절친이 되는 것도…… 배신을 하는 것도.
.
.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들에 갇혀 진리를 놓치지 마십시오! 두려움이 보이는 것들의 허상이라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설교 말미였다. 그런데 순간 오승욱의 시선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마치 내게 하는 말인 양, 놈은 뚫어져라 나를 응시하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저…… 저 자식이!’
두 눈을 부릅뜬 나는 놈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분명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하여 언제까지 저러는지 두고 볼 양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 주양현…….”
꺼내서는 안 될 이름을 중얼거린 나는 갑자기 가빠진 호흡에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30년 전, 나를 바라보며 죽어가던 주양현의 눈물과 오승욱의 그것이 똑같았던 탓이었다.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그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 순간이었다.
“아니야. 이건…… 이건 현실이 아니야!”
머리를 부여잡은 채 내가 소리쳤다. 바늘로 쑤셔대듯 사정없이 두통이 몰려온 찰나였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 세~♪♪
다행이었다. 마침 정희를 비롯해 모두가 목청껏 찬송가를 부르는 중이었다. 덕분에 나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던 내 음성도 찬송가에 묻혔다.
단상 옆, 소리가 둔탁한 중고 피아노 건반을 치는 오승욱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놈의 얼굴에는 성스러운 찬양만이 가득했다.
***
카페에 마주 앉은 정희와 나는 작은 실랑이 중이었다. 오전 예배가 끝난 후였다.
나는 분명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오승욱의 두 눈을 똑똑히 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희는 오승욱이 단 한 번도 이쪽을 쳐다보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말이야? 정말, 우리 쪽을 안 쳐다봤다고?”
“그렇다니까. 예배 끝날 때까지 이쪽은 아예 눈길도 안 줘서 유림이가 얼마나 서운해했는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보다 예배에 진심인 정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시야에서 오승욱을 놓친 일은 없었다.
“그럼, 당신은 오승욱이 눈물 흘리는 것도 못 봤어?”
“눈물은 무슨. 오늘 아주 중요한 설교여서 오목사가 시종일관 얼마나 진지했는데.”
“허어 참…….”
“당신, 또 딴생각했구나?!”
“아니야. 오늘은 나도 집중했다니까.”
“잠깐 노력이야 했겠지. 우리 딸 사윗감인데.”
“근데 왜 내 말은 안 믿는 건데?”
“당신, 오 군 마음에 안 들어 하잖아.”
“큼! 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싫은 내색을 한 건 아니었으나 딱히 오승욱을 칭찬하지도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정희는 이미 내 속을 꿰뚫고 있었다. 30년을 함께 한 내공이었다.
“당신 눈빛에 다 쓰여 있거든! 오군 얘기만 나오면 무슨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잖아.”
“…….”
“당신은 금방 티가 난다니까.”
속이 발가벗겨진 꼴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유림이의 연애가 빨리 끝날수록 평화로운 나의 일상도 곧 돌아올 테니.
유림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또 만나면 그만이었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이제 막 개척하는 애송이 목사에다 딱 봐도 부흥하기 어려운 구멍가게만 한 교회인 거. 교인도 30명이라더니 고작 열댓 명 앉아있는 데다 대부분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잖아. 차림새도 그렇고, 십일조나 제대로 걷히겠어?! 목양실도 그게 뭐야?! 딱 1인용 이동화장실만 해가지고.”
아이스커피로 살짝 목을 축인 나는 연이어 아내 설득에 나섰다.
“설교도 뜨뜻미지근한 게 그래갖고 유입이나 되겠냐고. 막말로 어릴 때 버려져 근본도 모르는 놈을……. 지금이야 유림이가 신나서 저러지만 분명 곧 시들해질 거야. 배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그저 우리 유림이는 평범한 집안에서 무난하게 성장한 전문직을 만나는 게 최선이야.”
이때다 싶어 나는 신나게 떠들었다. 속이 후련했다.
정희가 좋든 싫든 딸의 행복을 위해 아버지로서 내세울 수 있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한시가 급했다.
“당신도 잘 생각해 봐. 내 말 틀린 거 하나 없으니까.”
“오 목사! 어……언제 들어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