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성공할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이학신, 아니 그 이상도 할 수 있지. 천국에 못 들어갈까 봐 자네는 못하겠지만 말이야.”
통쾌한 한방이라는 생각에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더 이상 덤비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아직 반응이 없는 오승욱에게서 과연 어떤 말이 나올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능구렁이 같은 놈이 뜻밖의 말을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정원에 나갔다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정원을? 왜, 안이 답답한가?”
“아, 아닙니다. 창가 뒤로 보이는 감나무가 아까부터 인상 깊어 가까이 보고 싶어서요.”
딱히 허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말을 돌리는 꼬락서니가 꼬리도 내린 데다 공손하게 부탁하고 있으니.
다만 간간이 나를 응시하는 눈빛은 어딘가 모르게 섬뜩했다. 죽어가던 주양현의 눈빛이 겹쳐 보인 탓이었다. 그러나 살펴본 결과, 오승욱은 망자의 귀환이 아니었다. 단지 판에 박은 얼굴이 여전한 미스터리일 뿐.
확신이 서니 더 이상 긴장되지 않았다. 제멋대로 뛰던 심박수도 안정적이고 어려운 부탁도 아니라 흔쾌히 들어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걸리는 한 가지가 있었다.
감나무
“그래? 그럼 같이 나가지.”
***
현관 밖을 벗어난 오승욱이 곧장 감나무로 향했다. 성큼성큼 보폭이 큰 발걸음이 거침없었다.
‘산골서 자랐다는 놈이, 누가 보면 감나무 처음 보는 줄 알겠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 내가 신기한 듯 감나무를 살피는 오승욱 뒤로 천천히 다가갔다.
“흐음…….”
“…….”
“하아, 이거 참…….”
별난 일이었다. 마치 살인사건 현장을 둘러보듯 오승욱은 나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는가 하면 뒷짐을 지고 나무 주위를 돌며 끌끌 혀를 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열매를 그는 매섭게 노려보기까지 했다. 시선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임한 순간이었다.
“큼! 근데 자네는 내 딸 어디가 좋아 사귄 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이 진심인 데다 밝고 솔직한 마음이 예뻤습니다.”
“천방지축 제멋대로인데, 감당이 되겠는가?”
“그야, 시간이 지나 보면 알 수 있겠죠.”
‘건방진 놈. 어차피 넌 서류에서 탈락이야!’
여전히 감나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오승욱 뒤로 잔뜩 인상을 구긴 내가 한껏 비웃음을 날리던 찰나였다.
갑자기 그가 뒤돌아섰다.
“선생님. 혹시 이 댁에 오실 때부터 이 감나무가 있었습니까?”
“아니. 내가 고향집에서 가져온 나무이네.”
“고향집에서요? 정말……입니까?”
나를 보며 흠칫 놀란 오승욱에 나는 사뭇 불쾌함을 느꼈다. 흡사 감나무를 살피다 놀란 그 눈빛이었다.
“자네, 대체 아까부터 왜 그리 감나무에 집착을 하는 건가?”
“이 감나무가 정말, 선생님 고향집에서 가져온 나무입니까?”
대답도 않은 채 거듭 물어오는 오승욱에 보다 못한 내가 역정을 냈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지금 나를 탐문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다만 이 감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 저도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
“큼! 정확한 연식은 모르겠으나 외할머니 때부터 유산처럼 물려받은 귀한 나무이네.”
“…….”
간결하지만 나는 나름 성의 있게 대답했다. 그런데 되레 입을 닫은 오승욱이 느닷없이 감나무 옆, 연못 앞에 쭈그려 앉아 비단잉어들과 눈을 맞췄다.
“이제, 자네가 대답할 차례야.”
보다 못한 내가 오승욱을 재촉하자 그가 일어섰다.
“선생님은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셨군요.”
“모…… 뭐라고?”
바짝 내 앞에 다가온 오승욱에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괜한 긴장감에 식은땀이 흐르고 마른침이 넘어갔다. 하필 땀을 식혀줄 바람 한 점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자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선생님께서는 정말, 무신론자가 맞습니까?”
“……뭐? 하! 난 또 뭐라고.”
나는 그제야 잔뜩 움츠렸던 어깨를 내렸다. 폼 잡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거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보게,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트집 잡는 거라면 넣어두게. 내 생각은 완고하니까.”
“무신론자가 확실하시다면 고향집에서 이 감나무는 왜 가져오셨습니까?”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듯 두 눈을 부릅뜬 오승욱의 날 선 눈매가 매서웠다. 원망과 개탄이 복잡하게 뒤섞인 오묘한 눈빛이었다.
“말했지 않나. 유산처럼 물려받은…….”
“종종 심심치 않게 연못 속 잉어들이 죽어나가지 않았습니까? 이유 없이 말이죠.”
“아니, 자네가 그걸 어떻게…….”
“제가 그 이유를 알려드리죠.”
말끝에 걸음을 옮긴 오승욱이 손가락을 뻗어 연못을 가리켰다.
“여기 연못 위에 비치는 감나무 가지를 보십시오. 감이 영글면 가지는 더 기울어지겠죠.”
진지한 그의 설명에도 나는 딱히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연못 위에 감나무 가지가 비치는 건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여기 잉어들을 보십시오. 종일 뱅글뱅글 연못가를 돌기만 하는 잉어들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니, 언제부터 이랬지?”
그제야 상체를 기울인 내가 연못을 들여다봤다. 쉼 없이 연못가를 돌고 있는 잉어 무리가 한 눈에도 불안정한 움직임이었다.
“대체, 잉어들이 죽은 이유가 뭔가?”
“이 감나무를 물려받으실 때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무얼, 말인가?”
“잉어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쳐 뛰어오르다 죽은 겁니다.”
“공포에 질리다니, 그게 무슨…….”
“선생님께서는 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원귀들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감나무 가지가 흔들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생각날 뿐이었다. 아니, 원망스러웠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건방진 저 예수쟁이의 성난 이를 당장에 부러뜨렸을 것을…… 감히 내 소중한 유산에 악담을 쏟아붓는 오승욱 저놈이야말로 악귀가 틀림없었다.
맞다. 내가 잠시 마음을 놓았다.
30년 전 죽은 내 친구 주양현과 판박이 얼굴, 증명할 수 없는 과거, 잉어와의 교감, 원귀를 보는 능력까지…….
계속 의심했어야 했다. 오승욱의 정체를.
어머니가 사라진 이후 감나무는 내게 모친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감나무를 가까이 두라던 어머니 말씀이 바로 그 증표였다. 그런데 일개 목사 따위가 감히 신성한 나무를 욕보이다니. 저 예수쟁이는 내 어미를 욕보인 거나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 굿판을 구경하며 접신한 어머니를 수없이 봐왔던 나였다. 죽은 주양현이라고 못할 건 없었다. 묘한 구석이 많지만 망자의 귀환이 내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물론 저놈이 기이한 능력을 가진 진짜 오승욱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실체가 뭐든 평화로운 내 삶을 침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감나무를 뽑아 태워버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승욱.”
.
.
“너, 누구야?!”
가늘게 눈을 뜬 내가 물었다. 살짝 고개를 돌린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머물렀다. 심장이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제가 누구인지 몰라, 두려우십니까?”
“모……뭐? 아니 이 자식이!”
도발하는 오승욱에 발끈한 나의 사나운 눈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세울 때였다.
“아빠! 승욱 오빠!”
유림이었다.
“아니, 무슨 얘기를 그리 재밌게 나누길래 내 말도 못 들어?”
“미안. 불렀었어?”
“응. 아까부터 창문에서 소리 질렀어. 엄마가 저녁준비 다됐다고 들어오래.”
“알겠어! 선생님, 이만 들어가시죠.”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세등등했던 건방진 도발이 금세 어디 갔나 싶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집어삼킬 듯 혓바닥을 놀린 놈이었다.
그런 오승욱에 나는 역정을 내지 않았다. 내 하나뿐인 딸, 유림이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으니.
***
정희가 솜씨를 부린 저녁밥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내 커리어에 한 획을 그은, 오늘은 명백히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식탁에 둘러앉은 정희는 대뜸 오승욱에게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요.”라고 말했다.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더 얹었을 뿐인데 주인공이 바뀐 거였다.
식사 전 무언의 감사기도를 하는 오승욱에 그와 마주 앉은 정희는 세상 다 가진 얼굴을 했다. 까짓것 나도 하면 되지 싶은 순간이었다. 마치 정희를 뺏긴 것 같은 불쾌감이 엄습했다.
식사 내내 오승욱은 친절했다. 이목을 끄는 말재주가 있었고 늘 미소를 보였다. 두 그릇이나 비운 고봉밥으로 정희를 뿌듯하게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희보다 한 술 더 뜬 존재가 있었다. 유림이었다.
벌써 다이어트에 돌입했는지 새 모이를 먹는 양 깨작거리는가 싶더니 꿀 빨 듯 옆에 앉은 오승욱만 쳐다보는 게,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17년간 열심히 돈을 모아 마련한 내 집이었다. 내 정원이었고 내 밥상이었다. 그런데 한순간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나를 짓눌렀다.
마치 절친했던 친구 주양현에게 내 인생 전부를 빼앗긴 것 같은…….
딸의 남자친구가 하필 주양현과 판박이만 아니었어도 느끼지 않았을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식사 내내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오승욱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으레 먼저 시선을 피해버렸다.
흡사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정겨워하는 놈의 눈을 나는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옛날, 선한 눈매로 배시시 눈웃음을 짓던 주양현이 떠오른 탓이었다.
「“너, 누구야?!”」
조금 전, 정원에서 내가 놈을 향해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오승욱에게서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내 인생 최고의 날,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난 네가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