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정희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가까이 서있는 오승욱이 보였다. 테이블에서 불과 1미터쯤 떨어진 거리였다.
“두 분 말씀 중이라 잠깐 기다렸습니다. 아, 유림이는 밖에서 통화 중이고요.”
“아……그래요? 어서 앉아요.”
“네.”
아내 손짓에 오승욱이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물론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행여 내 말을 엿들었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내가 신경 쓰인 건 내 말에 상처받았을 오승욱의 자존심이 아닌 놈의 정체였다. 옆자리에 앉은 오승욱에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 이유였다.
“아까 설교 정말 좋았어요. 특히 말미에 두려움과 믿음에 관한 부분이 정말 은혜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승욱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정희에 나는 화가 났다. 내가 뱉은 험담을 놈이 들었을까 싶어 수습하려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마침 통화를 끝낸 유림이가 카페에 들어서자 이때다 싶어 나는 배가 고프다는 핑계를 댔다. 오승욱과의 독대를 위해서였다.
“나가서 식당을 알아보라고?”
“아빠가 오랜만에 질 좋은 스테이크가 당겨서 그래.”
“그럼 폰으로 검색해 볼게.”
“날씨도 화창하겠다, 오랜만에 모녀끼리 산책도 할 겸 나가봐. 전화하면 오 군이랑 갈 테니까.”
눈치를 챘는지 정희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기어이 아내와 딸을 밖으로 내보냈다. 자리를 옮긴 오승욱이 나와 마주 앉았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한데, 말씀하시죠.”
오승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심상치 않은 눈매가 역시 눈치 백단이었다. 주양현도 눈치가 빠른 녀석이긴 했다. 다만, 지나치게 나를 믿었을 뿐.
“큼! 자네가 내 딸에게 먼저 고백했다지?”
“유림이도 제게 호감이 있어 귀국하는 날 말하려고 했다더라고요. 제가 조금 서둘렀을 뿐입니다.”
“……큼!”
나는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내 집에 왔을 때의 겸손함은 어디 가고 자신감을 넘어 거만스럽기까지 했다. 정희가 이 꼴을 봤어야 했다. 오승욱은 결코 성스러운 목회자가 아니었다.
“내 딸, 어디가 마음에 들었나?”
“그건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내가 뻔한 소리나 듣자고 물었겠나?! 부족함 없이 자라 구김살 없는 내 딸이 구겨진 길을 걸어온 자네와 어울릴 거라 생각한 건 아닐 테고, 자네 진짜 목적이 뭔가?”
나의 공격적인 말투에도 별 반응이 없던 오승욱이 곧 입을 열었다.
“목적 같은 거 없습니다. 저는 그저 순수하게 유림이를…….”
“허 거참! 순진한 척 굴지 말게. 집사람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니까. 자넨, 이미 다 들켰어!”
마치 속내를 다 알고 있는 양 내가 선방을 날렸다.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승욱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머리 위로 서리가 내린 듯 오한이 느껴졌다.
“채워져서 행복한 게 아니라 모자라도 행복할 줄 아는 여자 같아 보여 욕심이 났습니다.”
“모……뭐라고?”
“유림이가, 어머님을 아주 많이 닮았더군요.”
“…….”
순간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대신해 테이블 위에 올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쭈뼛쭈뼛 곤두 선 내 신경세포들 사이로 시린 바람이 지나갔다.
카페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 얼굴을 알아보는 독자가 없었다면…….
나는 저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소주를 뿌린 뒤 불꽃이 올라온 라이터를 던져 놈을 활활 태워버렸을 터였다.
채워져서 행복한 게 아니라 모자라도 행복할 줄 아는 여자.
나는 그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30년 전, 사랑에 빠진 주양현이 주절거렸던 멘트였으니까.
그런데 그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난 오승욱이 내 앞에서 주양현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것도 감히, 내 딸을 두고.
“너 이 새끼…… 네 정체가 뭐야?!”
“정체, 라니요? 저는 숨김없이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내 앞에 나타난 건지, 말해.”
칼끝이 코앞까지 닿은 나와 달리 오승욱이 호기롭게 찻잔을 들었다. 입가에 띄운 소름 돋는 미소와 함께.
“선생님 댁 감나무는 뽑으셨습니까?”
“말하라고 이 새끼야!”
“저명한 작가님께서 이리 민낯을 드러내시면 안 되지요. 여기는 보는 눈이 많습니다.”
“너, 누구야?!”
.
.
“제가 두렵습니까? 아니면, 죄가 두렵습니까?”
“모……뭐라고?”
“선생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리 두려운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드르르르륵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때마침 폰 진동이 울린 건.
내 입맛에 제격인 식당을 찾았다며 빨리 오라는 유림이 전화였다. 보나 마나 정희가 서둘렀을 터였다. 나와 오승욱만 두고 나온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내가 전화를 끊자 오승욱이 일어났다.
“저는 반찬 나눔 사역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유림이에게는 제가 따로 연락하죠. 식사 맛있게 하시고 조심히 가십시오.”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 오승욱이 먼저 카페를 나갔다.
“……건방진 새끼.”
뒤늦게 나는 놈이 앉았던 빈 의자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송골송골 이마에 맺혔던 식은땀은 자취를 감췄으나 끌어 오르는 화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나를 농락한 놈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넌, 오승욱이 아니야.”
내 안에 서서히 확신이 들어찼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죽은 놈이 멀쩡히 살아있을 리 없다며 오승욱을 인정하려 했던 나였다.
그런데, 놈이 먼저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
무려 30년 만에, 나 주양현이 돌아왔다고.
물론 말도 안 되는 이 현실을 모두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만에 하나 주양현이 살아있었다 해도 그는 나이를 먹었어야 했다. 한데 내 앞에 나타난 그놈은 3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뭔가, 이상해.’
주양현에 관해 어머니는 내게 어떤 말씀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저 주어진 내 인생을 열심히 잘 살아가면 된다 하셨다.
그런데 덜컥 일이 벌어졌다. 과거의 불쾌한 서사가 돌아온 거였다. 누구와도 상의할 수 없는 음지 속, 영원한 비밀이었다.
***
“에휴, 불쌍해서 어째…….”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갔다 들어온 아내였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왜, 무슨 일 있어?”
“글쎄 연못 밖에서 잉어가 또 죽었어. 것도 두 마리나.”
“하아, 그거 참…….”
“아니, 수질도 정상이고 양질의 사료에 잉어도 건강하다는데 왜 가다 한 번씩 이러는지 모르겠네.”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정희가 말을 이었다.
“대체 뭘 보고 놀란 건지, 뜬 눈에 잉어들이 입을 함지박 만하게 벌리고는 잔뜩 사료를 토했더라고. 거기다 꼬리까지 굽고 배는 새까맣게 변한 거 있지.”
“…….”
“어찌나 미안하던지…… 눈물 나는 거 간신히 참았어.”
별 대꾸 없이 나는 정원으로 향했다. 잉어가 죽어나갈 때마다 그 처리는 늘 내 몫이었다.
곧 저만치 연못 밖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는 잉어 두 마리가 보였다. 한 눈에도 팔뚝만 한 게 성어였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죽은 잉어를 살폈다. 정희 말대로 잉어는 사료를 다 토해낸 채 배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정말, 오승욱 말이 사실일까……?”
비닐봉지에 잉어 사체를 담기 전, 나는 감나무를 올려다봤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설익은 열매들이 벌써 탐스러웠다. 하지만 나무를 바라보는 내 속은 편치 못했다.
내 눈에는 저리 싱그러운 가을이 보이는데, 어찌 그놈 눈에는 원귀들이 보인단 말인가…….
오승욱을 떠올리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그놈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그가 주양현이 아니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결국 ‘설마’가 나를 잡았다.
그래서였을까? 선잠이 든 사이 나는 난생처음 주양현 꿈을 꿨다.
스무 살 봄, 함께 산마루 언덕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던 꿈.
사실 그건 꿈이 아닌 회상이었다. 스무 살이 된 봄 무렵 함께 산마루 언덕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서로의 미래를 응원했던 옛 기억…….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단 한 놈의 등장으로 인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 거였다.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휘이-
때마침 잔잔한 아침바람에 감나무 가지가 흔들거렸다. 그러자 연못 속, 크고 작은 잉어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허어, 이거 참…….”
찰떡 같이 들어맞는 오승욱 경고에 나는 탄식을 뱉어냈다. 불현듯 스친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7살에 처음 신병을 앓고 11살, 어미 품도 못 벗어난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으셨다고 했다.
이후 외할머니 딸이자 역시나 무당이 된 내 어머니가 19살 나이에 임신을 하자 줄곧 청악산에 머무르시던 외할머니는 잠시 집으로 내려와 마당에 묘목을 심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묘목이 바로 이 감나무라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당시 외할머니께서는 임신한 딸에게 이 감나무를 늘 곁에 두라 하셨다고 했다. 하나 이유는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외할머니에 이어 17살 나이에 신내림을 받은 어머니였지만 자식을 역적 보듯 하는 할머니에 어머니는 차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셨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린 내 기억 속, 어렴풋이 남아있는 외할머니는 마치 도깨비 뿔에 호랑이 이빨을 가진 동화 속 괴물 같았다. 단 한 번도 내게 살가운 눈길이나 다정한 말투는커녕 안아주신 적도 없었다.
다만 딱 한 번, 외할머니가 나를 돌아보신 적이 있었다. 6살 무렵 할머니가 무서워 어머니 등 뒤로 숨은 찰나였다. 외할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아비를 닮아 재주가 없겠구나. 쯧쯧.”